[인문사회]천재에겐 노력 뛰어넘는 그 무언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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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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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재 사로잡힌 자, 사로잡은 자 / 피터 키비 지음·이화신 옮김 / 432쪽·1만8000원·쌤앤파커스

두 유형의 음악거장 통해본 천재의 본질 탐구
“발군의 관조능력-규칙 제정자가 진정한 천재”

“연주 여행을 하는 동안 즉흥곡을 연주하면서 모차르트는 뭔가에 홀린 것처럼 하프시코드를 두들겼고 가끔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기도 했다.”

누군가 여덟 살의 모차르트를 관찰하고 쓴 보고서의 일부분이다. 보고서 속의 모차르트는 마치 스스로를 잃어버린 듯하다. ‘자기망각’ 혹은 ‘무아지경’이란 말로 설명할 수도 있다. 미국 미학회 회장을 지냈고 현재 럿거스대 철학과 교수인 저자는 “여기서 그려지는 것은 분명 영감을 받은, 신에게 사로잡힌 천재의 모습이다”라고 말한다.

이 책은 천재에 관한 책이다. 저자는 서구의 천재 음악가들을 철학적, 미학적인 시각에서 분석하면서 두 가지 양상으로 나타나는 천재상을 살핀다. 그가 정의한 두 천재상은 ‘사로잡힌 자’로서의 천재와 ‘사로잡은 자’로서의 천재다. 달리 말하면 신에게 붙들린 ‘소극적’인 의미의 천재와 스스로 작품에 법칙을 부여하는 ‘적극적’인 의미에서의 천재이며 창조의 ‘매개체’로서의 천재와 창조의 ‘주체’로서의 천재다.

모차르트는 ‘사로잡힌’ 천재를 대표하는 인물로 제시된다. 창작을 위한 노력이라곤 전혀 하지 않는 듯 보이는 모차르트는 마치 잠시 신에게 빙의(憑依)돼 연주하고 작곡하는 것으로 비친다.

반면 베토벤은 악상이 떠오르면 식음을 전폐한 채 창작에 파고드는 집요함을 보였다. “운명의 목덜미를 움켜쥐겠노라”고 맹세하기도 한 베토벤의 적극적인 면모는 피아니스트 안톤 할름과의 일화에서 잘 드러난다. 베토벤이 할름에게 몇 가지 오류를 지적하자 할름은 베토벤 본인도 실수를 하지 않았느냐며 반격했다. 이에 베토벤은 “맞네. 하지만 나는 실수를 허용한 것이고, 자네는 실수를 범한 것이지 않나”라고 응수했다.

저자는 대가들의 천재적 면모만 나열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쇼펜하우어, 칸트의 담론을 인용하며 음악가의 모습에서 일반적인 천재론에 대해 파고든다. 재미있는 에피소드 모음 정도를 기대한 독자들이 읽기엔 다소 버거울 정도의 깊이까지 들어간다.

쇼펜하우어는 “대상에 완전히 몰입하는 순수 관조를 통해서만 이념은 이해될 수 있으며 천재성의 본질은 정확히 그런 발군의 관조 능력으로 구성된다”고 말했다. 천재란 이데아를, 특히 작곡가는 물(物)자체를 직접 인식할 수 있으며 그 실체에 대한 지식을 예술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그는 해석했다. 저자는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모차르트를 ‘음악의 천재’ 나아가 ‘일반적 천재’의 상징으로 완성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무아지경으로 창작에 열중한 모차르트는 낭만주의 시대 천재의 전형이 됐다”고 설명한다.

칸트가 생각한 천재성은 ‘예술 작품을 창작하는 타고난 능력’으로 정의된다. 다시 말해 천재성은 ‘모범적인 형태’로 ‘예술을 창작해내는 능력’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거기에 가장 걸맞은 이미지는 베토벤”이라고 말한다. 칸트에게 있어 천재는 규칙의 제정자다. 모차르트가 보여준 ‘사로잡힌 자’라는 천재의 이미지는 베토벤에 이르러 ‘사로잡은 자’로 옮겨졌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누구든 노력하면 천재적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대해 저자는 “그런 ‘일벌레 천재’들은 진정한 천재의 반열에 오르기에 부족하다”고 단언한다. 바흐와 하이든은 끊임없이 노력하는 성실함과 비범한 집중력을 발휘해 거장으로 우뚝 섰지만 그들에게 ‘천재’라는 칭호를 붙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저자는 “천재라 불리기 위해선 입지전적 인물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절절한 성공담’ 이상의 그 무언가가 더 필요하다”라고 말한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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