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천년古都교토의 봄에 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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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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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일본 교토(京都)였을까.
그리웠다. 교토가. 벚꽃 비를 맞으면서 교토의 소박한 골목 구석구석을 걷고 싶었다.
도쿄(東京)가 발랄한 20대 여성이라면 교토는 우아한 40대 여성 같다.
교토는 일본 궁정문화가 꽃핀 헤이안(平安) 시대(794∼1185년)부터 메이지유신(明治維新)으로 도쿄 천도가 일어난 1868년까지 1000년 넘게 일본의 도읍이었다.
여자는 30대 중반을 넘어서면서는 ‘여성의 품격’을 생각하게 된다.
싸구려 와인과 잘 숙성된 와인의 맛을 분별하게 되는 나이여서랄까.
정신없이 사느라 잊고 마는 여성의 향기를 교토에선 되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삶이란 계획한 대로 흐르는 것만은 아니다.
머리론 우측 깜빡이를 켰는데, 마음은 한없이 왼쪽으로 치닫기도 한다.
그래, 교토에 가자! 벚꽃이 필 무렵까지 조바심이 나서 2월 어느 날 일단 떠났다.
교토를 고요하게 탐닉하고 싶어서. 내 삶의 속도를 한 템포 줄이고 싶어서.》

○ 교토 여인의 사랑, 기온코부

교토에는 예로부터 게이샤(藝者)들이 명성을 떨친 6대 하나마치(花街·요정 밀집지역)가 있었다. 게이샤는 일본 요정에서 전통 춤이나 노래로 술자리의 흥을 돋우는 여성인데, 교토에선 특별히 게이코(藝妓)와 마이코(舞子·20세 이하의 견습 게이코)로 나뉘어 불린다. 교토에 도착한 밤 시간 6대 하나마치 중 아직까지 명맥을 잇고 있는 기온코부(祇園甲部) 동네부터 갔다. 손님을 배웅하는 게이코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아니나 다를까 어둠이 깊게 내린 골목에서 두 명의 게이코가 걸어오고 있었다. 얼굴을 새하얗게 칠한 그들을 보는 순간 밀려오는 애잔함과 ‘이방감(異邦感)’…. 카메라를 들이대는데도 아랑곳없이 대화를 나누며 그들은 요정으로 훌쩍 들어갔다. 외지인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숱하게 받아왔기 때문이리라.

고베(神戶)대 대학원의 니시오 구미코 연구원이 쓴 ‘교토 하나마치의 경영학’에 따르면 현재 교토에는 196명의 게이코와 77명의 마이코가 있다고 한다. 치열한 경쟁을 거쳐 매년 각 개인의 매출액 순위도 집계가 된다. 신용과 소개로 손님이 드나드는 이 지역 요정에서 일하는 이들은 연회석에서 들은 이야기를 절대로 발설하지 않는다. 손님의 이름을 먼저 묻지도 않으며, 가만히 듣다가 자연스럽게 화제를 잇는다. 그들이 꼽는 우아함이다.

유명 여류 가인(佳人) 오노노 고마치(小野小町)가 살았던 헤이안 시대엔 중국 당나라에서 전해진 새하얀 피부가 미인의 조건이었다. 얼굴에 칠한 백분 밑으로 그리움을 삼키고 있을 게이코의 사랑을 상상하니 마음이 아련해졌다. 박상철이 부른 가요 ‘황진이’의 가사도 떠올랐다. ‘황진이 너를 두고 이제 떠나면 언제 또 올까. 개나리도 피고 진달래도 피고 뻐꾸기가 울 텐데 그리워서 어떻게 살까.’ 게이코들이 총총 사라진 요정의 호롱불 앞에서 생각했다. 어쩌면 여자들의 본능 속엔 재색을 겸비한 게이코가 똬리를 틀고 있지는 않을까. 흔히 사랑에 빠지면 안달복달하는 우리 여자들이 게이코의 마음 단련에서 배울 점은 없을까.

○ 고요한 교토의 장인 정신

일본 교토시립 예술대학원을 나온 여성 도예가 이윤신 씨는 내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교토타워 꼭대기에서 돌을 던지면 십중팔구 도예가가 그 돌을 맞을 것이란 말이 있어요. 그만큼 도예가가 교토에 많이 산다는 뜻이죠.” 교토역과 연결된 이세탄백화점 내 이탈리아 레스토랑 ‘더 키친 살바토레 쿠오모’에서 가까이 본 교토타워의 야간 조명은 흰색이었다.

좀 더 젊었던 날엔 도쿄타워의 금색 야간 조명이 마냥 좋아 보였다. 그런데 지난해 겨울 마주친 도쿄타워의 화려한 기세는 사람을 한껏 주눅 들게 했다. 교토타워는 달랐다. 낮이고 밤이고 한결같아 오히려 끌리는 모습. 바로 중년 여성의 품격! 정작 교토 사람들은 이 타워가 멋대가리 없다고 수치스럽게 여긴다지만, 난 생각했다. 감정의 군더더기 없는 교토 타워와 교토 사람, 교토 도자기 그릇이 서로 참 닮았다고.

흔히 교토 사람들은 다소 까탈스럽고 엉뚱하고 집요하며 창조적이란 평가를 받는다. 과거부터 개성적 기업가와 장인이 이곳에 존재했던 이유다. 양준호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교토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이란 책에서 “교토 사람들은 지역적 자존심이 강하여 도쿄를 문명적 촌놈들의 집합이라고 천시할 정도다. 이러한 반골 기질에서 오는 강한 정체성과 자존심이 교토 기업 및 교토 연구자들의 혁신적 사고의 원천”이라고 했다.



교토에는 닌텐도, 교세라, 일본전산 등 유명 기업들이 대거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일반 관광객이 이런 기업들을 방문해 교토의 기운을 느끼기가 쉽지는 않다. 이럴 때 추천하고 싶은 코스는 교토의 문화 체험이다. 교토 청수사(청水寺·기요미즈데라) 앞에 자리한 140년 역사의 도자기 노포(老포), ‘아사히도(朝日堂)’는 기계로 만든 800엔(약 1만 원)짜리 컵부터 가난한 여행자도 호기를 부릴 수 있는 2000∼4000엔(약 2만5000∼5만 원)짜리 신진 작가의 수제 사발과 컵도 판다. 도자기 체험 공방도 함께 운영해 이미 만들어진 컵 등에 원하는 무늬를 그릴 수 있다. 난 이곳에서 한참 동안 여러 도예작품을 만지작거리다가 한 여류 작가가 빚은 작은 도자기 컵 한 개를 기념으로 샀다. 벚꽃이 흩날리듯 그려진 은은한 교토의 품새였다. 원숭이 얼굴이 그려진 800엔짜리 아이용 나무젓가락도 앙증맞았다.

청수사에서는 작은 나무판에 이루고 싶은 꿈을 써 내걸어도 좋겠다. 빼곡히 걸린 나무판 중엔 한글도 제법 눈에 띈다. 사랑 점을 치는 돌도 있다. 눈을 감고 반대편 돌까지 무사히 도착하면 사랑이 이뤄진다는데…. 내 사랑, 과연 안녕할까요?

○ 전통과 현대가 만난 교토의 디자인


교토의 유명 관광지로는 금각사(긴카쿠지·金閣寺)와 은각사(긴카쿠지·銀閣寺)가 있다. 1397년 건축된 금각사는 중심 건축물인 3층 사리전의 금각 장식이 휘황찬란하다. 1950년 방화로 소실돼 1955년까지 5년간 복원, 1987년 대대적 보수가 이뤄진 아픈 과거를 화려한 금박 옷이 감싸 덮어주고 있는 듯하다.

반면 은각사는 호젓한 일본식 정원의 진수를 보여준다. 근대 일본 철학의 창시자인 니시다 기타로(1870∼1945)가 산책을 즐겼다는 ‘철학의 길’(데쓰가쿠노미치)도 은각사 앞에 있다. 교토 출신의 노벨상 수상자들도 이 길을 산책했다. 천천히 걷다가 인근 ‘오멘’ 우동 집의 튀김 우동 세트로 허기를 채우고, 고양이를 기르는 주변 기념품가게에서 중고 기모노를 입어 봐도 좋겠다.

교토의 유명 화장품 가게인 ‘요지야’도 은각사에서 내려오는 길에 들러볼 수 있다. 게이코들이 즐겨 쓴다는 기름종이, 유자로 만든 립밤과 비누…. 대놓고 섹시한 샤넬 ‘No. 5’ 향수보다 유자 내음이 더 향긋할 것 같아 골라 든다. 지친 하루를 마친 당신이 좋아할까 하고.

‘교토의 현대적 디자인’을 찾는다면 단연 패션 브랜드 ‘SOU SOU(そうそう)’다. ‘그래, 그래. 네 말이 맞아’란 이 브랜드의 뜻은 꼭 당신의 따뜻한 미소 같다. 기모노를 변형시킨 현대적 옷, 프랑스 스포츠 브랜드 ‘르 코크 스포르티브’와 협업한 일본 전통신발 ‘지카타비’ 디자인의 스니커즈는 ‘일본 전통을 기반으로 한 모던 디자인’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1592년 문을 연 화과자 가게 ‘도라야(とらや)’, 1626년 녹차 가게 ‘잇큐엔(一休園)’, 1764년 젓가락 가게 ‘이치하라(市原)’…. 교토엔 한 우물을 오랫동안 파는 상인의 품격도 있다.

때로 인생이 지나치게 희극적이거나 비극적일 때 훌쩍 찾고 싶은 곳, 벚꽃 필 무렵 당신의 손을 정답게 붙잡고 걷다가 ‘사랑한다’고 기습적으로 말해 버리고 싶은 곳, 교토다.

교토=글·사진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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