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유리세계서 되짚는 생명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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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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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실험극단 신주쿠양산박의 대표작 ‘소녀도시로부터의 메아리’의 공연 이미지. 극단 대표인 재일교포 김수진 씨가 연출하고 배우로도 출연한다. 11일부터 한일합작으로 국내에서 초연된다. 사진 제공 스튜디오 반
일본 실험극단 신주쿠양산박의 대표작 ‘소녀도시로부터의 메아리’의 공연 이미지. 극단 대표인 재일교포 김수진 씨가 연출하고 배우로도 출연한다. 11일부터 한일합작으로 국내에서 초연된다. 사진 제공 스튜디오 반
재일교포 김수진 씨가 이끄는 일본극단 신주쿠양산박의 3대 레퍼토리로 꼽히는 연극 ‘소녀도시로부터의 메아리’가 국내 초연된다.

‘소녀도시로부터의 메아리’는 일본 실험극의 개척자로 꼽히는 가라주로(唐十郞)가 1985년 발표한 몽환극이다. 임신 초기 쌍둥이 중 하나가 태내에서 소멸하는 ‘쌍둥이 소실 증후군(vanishing twin syndrome)’을 모티브로 삼았다. 수술을 위해 전신마취 상태가 된 다구치가 엄마의 태내에서 사라진 이란성쌍둥이 여동생 유키코를 만난다.

유키코는 모든 것이 차갑고 투명한 유리로 변하는 ‘유리의 세계’라는 비현실적 공간에서 살고 있다. 유키코는 ‘은하철도 999’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 스스로 로봇이 되려는 철이처럼 아름다운 유리인간이 되기를 꿈꾼다. 다구치는 그런 유키코를 현실세계로 데려오려고 몸부림친다.

생명을 얻었지만 무의미한 삶을 사는 다구치와 생명을 잃었지만 뜨겁게 생을 열망하는 유키코의 대조를 통해 현대 산업사회에서 생명의 의미를 되묻는다. ‘유리의 세계’는 아름답지만 생명력을 상실한 불모의 공간이다. 이는 죽음을 찬미하며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일본 제국주의와 언젠간 깨지고 말 고속성장 신화에 빠져 무력해진 전후 일본 사회에 대한 복합적 상징이다.

신주쿠양산박은 ‘천년의 고독’(1989년) ‘인어전설’(1993년) ‘바람의 아들’(2005년) 등으로 국내 연극계에 신선한 바람을 몰고 왔다. 그 극단이 1993년 일본에서 초연한 ‘소녀도시로부터의 메아리’는 원작의 묘미를 역동적으로 형상화했다는 평을 받았다. 그해 일본문화청 예술제상을 수상했고 프랑스 아비뇽과 미국 뉴욕 등에 잇따라 초청되며 극단의 대표작으로 떠올랐다. 특히 5만여 개의 유리구슬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이다.

이번 공연은 신주쿠양산박과 한국의 공연창작집단 스튜디오 반이 공동 제작한다. 일본어로 공연하며 한국어 자막을 서비스한다. 2만∼4만 원. 11∼20일 서울 종로구 연지동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 111. 02-352-0766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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