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획일적인 친환경 이미지 탈피, 살고싶은 선수촌 만들려 노력”

  • Array
  • 입력 2010년 3월 2일 03시 00분


코멘트

밴쿠버 겨울올림픽 선수촌 총괄설계 로저 베일리 씨

2010 밴쿠버 겨울올림픽 선수촌으로 쓰인 폴스크리크의 종합주거지구 ‘밀레니엄 워터’. 오래된 도심 항만 주변 공업지구를 재개발해 지속 가능한 친환경적 건축을 추구했다. 사진 제공 챌린지시리즈
2010 밴쿠버 겨울올림픽 선수촌으로 쓰인 폴스크리크의 종합주거지구 ‘밀레니엄 워터’. 오래된 도심 항만 주변 공업지구를 재개발해 지속 가능한 친환경적 건축을 추구했다. 사진 제공 챌린지시리즈
1일 폐막한 2010 밴쿠버 겨울올림픽 선수촌으로 쓰인 ‘밀레니엄 워터’ 종합주거지구 프로젝트의 총괄 설계를 맡은 캐나다 건축가 로저 베일리 씨(56). 건축도시공간연구소가 주최한 세미나에 참석하려고 내한한 그를 2월 26일 오전 서울 강남구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그는 1만6000채 규모의 밀레니엄 워터에 대해 “지속가능한 건축의 전형적 이미지를 감추고 만든 지속가능한 건축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밴쿠버 도심 항만 지역의 사우스이스트 폴스크리크에 있는 밀레니엄 워터는 올림픽 계획이 마련되기 전인 1990년대 중반부터 논의된 프로젝트다. 올림픽 인프라 계획과 시기가 맞아 그 일부로 편입된 뒤 지난해 완공했다. 올림픽 이후의 입주 신청은 완료된 상태다.

폴스크리크는 제1차 세계대전 때부터 조선산업이 발달한 지역이다. 전쟁 뒤에는 철강과 철도산업이 일어나 사람들이 모여들었지만 1990년대 도시가 노후하면서 재개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베일리 씨는 기존 거리와 시설을 최대한 살리면서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등 유럽의 오랜 도시를 모델로 삼아 재개발 계획의 큰 그림을 그렸다.

높은 에너지 효율 덕분에 미국의 친환경건축인증단체인 그린빌딩협회로부터 최상 등급인 ‘골드’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첨단 기술을 적용한 건축 시스템과 에너지 설비는 이 지역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다. 건물은 여유 있게 듬성듬성 배치됐지만 층고는 일정하지 않다. 자연 채광 효율을 높이기 위해 층이 낮은 건물을 엇비슷한 방향으로 나란히 늘어세운 풍경이나 태양전지 기둥도 드물다.

건축 시스템을 위한 기술적 해법을 고민하기에 앞서 ‘지속가능한 지역 커뮤니티’에 대한 논의를 먼저 시작했기 때문이다. 눈에 띄는 것은 유럽의 구식 아파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중정(中庭·건물 속 정원). 건물 저층부는 엘리베이터 사용을 최소화하고 널찍한 계단을 둬 지역 구성원들 사이에 만남의 기회를 늘렸다.

“지속가능성과 환경친화에 대한 배려는 21세기 건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화두입니다. 이번 선수촌 프로젝트도 예외가 아니었죠. 하지만 그런 배려를 위한 장치를 건축의 외형에 드러낼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지속가능한 건축이 ‘모두 엇비슷해 보이는 건축’이라면 누가 그런 곳에 살고 싶어 하겠어요?”

밀레니엄 워터는 건물을 짓는 데 사용한 재료에 환경에 대한 배려를 반영했다. 중정에 마련한 놀이기구는 유리와 벽돌로 만들어 탄소사용을 줄였다. 건물마다 차양과 창문 등 외벽 디자인을 달리해 독립성을 갖도록 했다. 어떤 건물은 외벽이 물결 모양으로 굽이치고 다른 건물 벽체에는 오렌지색 차양이 불규칙하게 붙어 있다.

“친환경 건축 기술은 이제 ‘새롭고 신비한 것’이 아닙니다. 밀레니엄 워터가 특별한 것은 그동안 고안된 좋은 기술을 획일적으로 쓰지 않고 적절히 배분해 커뮤니티의 자율성을 추구한 것이죠. 사람을 지속적으로 공간에 끌어들이는 열쇠는 결국 디자인의 매력이니까요.”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