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오방색에 빠진 늦깎이 화가, 생명의 뿌리를 화폭에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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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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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미옥의 ‘능혜’(2010).
백미옥의 ‘능혜’(2010).
처음엔 강렬한 오방색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한발 다가서니 나이프로 물감을 긁어내거나 거친 붓질이 지난 흔적, 한땀한땀 바느질하듯 반복되는 세필 드로잉이 눈에 들어온다. 단색조의 추상작품과 더불어, 산과 나무 시리즈 등 구체적 형상을 담은 그림이 조화를 이룬다. 캔버스를 벗어난 설치작품도 있다. 쪽빛으로 염색한 두루마리 광목 천과 작가의 얼굴을 본떠서 만든 마스크로 구성된 작품이다.

3월 23일까지 서울 종로구 평창동 키미아트(02-394-6411)에서 열리는 백미옥 씨(59)의 ‘능혜’전. 그는 자신 안에 존재하는 심연의 형태를 표현한 평면과 설치작품을 ‘능혜’ 시리즈로 명명하고 동양의 정신과 현대적 기법이 스스럼없이 어우러지는 작품을 선보인다.

“능혜는 영원의 뿌리, 생명의 끈을 상징한다. 오래된 연못에서 피어나는 능화란 꽃을 생각하며 붙인 이름이다. 물 속에 잠긴 진흙더미에 몸을 담근 채 수면 위로 조금씩 줄기를 뻗쳐 꽃을 피우는 능화를 떠올리며 시작도 끝도 없는 영원성을 생각했다.”

그는 늦깎이 화가다. 그림에 대한 열정 하나로 대학원을 마친 뒤 40대에 영남대 회화과를 다녔고 49세 때 미국 애리조나대로 유학을 떠났다. 한데 그곳서 만난 스승은 학위에 연연하지 말고 활동하라며 뉴욕으로 등을 떠밀었다. 아무런 배경 없는 아줌마 화가는 뉴욕의 갤러리 소속작가로 미국과 독일에서 전시를 여는 성과도 거둔다.

이번 전시의 테마인 영원성에 대한 관심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무속신앙과 동양사상에 눈돌린 그는 절과 신당에서 사용하는 오방색에 주목한다. 그 깊이를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 광목천으로 직접 화폭을 만들어 쓰고 있다. 그 위에 물감으로 색을 입히고 붓으로 형태를 드러내는 노동집약적 과정을 거치며 독특한 물성과 작가의 혼을 담은 색감이 드러난다.

“내 작품 속 오방색은 생명의 끈에서 파생되는 다양한 의미의 존재이며, 반복되는 세필 드로잉은 현재에서 과거, 그리고 영원의 시점을 하나하나 되짚어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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