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욕망의 삼각관계, 심리적 기하학으로 진단… ‘바냐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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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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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냐 아저씨’의 마지막 장면. 바냐 역의 김명수 씨가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는 무대 중앙을 8개의 조형물이 빙 둘러싼다. 사진 제공 이다엔터테인먼트
‘바냐 아저씨’의 마지막 장면. 바냐 역의 김명수 씨가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는 무대 중앙을 8개의 조형물이 빙 둘러싼다. 사진 제공 이다엔터테인먼트
러시아 극작가 안톤 체호프의 연극은 고도의 심리극이다. 그의 연극 속 등장인물들은 서로 서로의 심리적 자장(磁場)에 얽혀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자장을 섬세하게 읽어내지 못하면 자칫 지루하게 느껴지기 십상이다.

심재찬 씨가 연출한 극단 전망의 ‘바냐 아저씨’는 이를 돌파하기 위해 그 자장을 시각화하는 데 주력한다. 무대 위에 8개의 독립된 목조공간이 객석을 마주보고 반원형으로 놓여 있다. 8명의 등장인물은 각자 자신의 둥지와 같은 그 공간 속 의자에 앉아 있다가 무대 중앙으로 등장하고 퇴장한다.

반면 무대 중앙에는 2개의 긴 탁자와 3개의 의자, 사모바르(러시아 찻주전자)가 놓인 난로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배우들은 ‘둥지’를 지키고 있다가 무대 중앙으로 나서서 이들 탁자와 의자의 위치를 계속 바꿔가면서 서로의 심리적 거리와 농담을 시각화한다.

‘바냐 아저씨’는 욕망의 삼각도가 중첩된 작품이다. 주인공 바냐(김명수)는 죽은 여동생의 남편인 세레브랴코프 교수(이종구)를 신처럼 떠받들며 살았다. 그러나 은퇴한 세레브랴코프가 재혼한 젊은 아내 옐레나(이지하)를 데리고 자신에게 운영을 위탁한 시골 영지로 내려오자 심한 환멸을 느낀다.

그것은 자신이 숭배하던 세레브랴코프가 이기적인 속물임을 뒤늦게 깨달은 점도 있지만 옐레나에 대한 연정이 촉발한 질투심 때문이기도 하다. 옐레나에 대한 욕망에 눈을 뜨게 되자 한때 자신의 영웅이었지만 지금은 늙고 추해진 세레브랴코프에 대한 열등감과 좌절감이 폭발하는 것이다.

옐레나는 3겹의 삼각관계의 축이다. 바냐의 조카딸 소냐(김지성)가 짝사랑하는 시골의사 아스트로프(김수현) 역시 옐레나를 사랑한다. 그로 인해 바냐와 그의 단짝인 아스트로프도 삼각관계에 놓인다.

체호프는 이런 심리적 역학관계를 감춰 놓았다가 서서히 드러낸다. 그럼으로써 사람의 말과 행동, 표면의 논리와 심층의 심리가 어떻게 이율배반적으로 길항하는지를 보여준다. 심재찬의 연극은 이를 심리적 기하학으로 풀어내려 했다. 그렇다면 8개 둥지의 바로 한가운데 위치해야 할 인물은 누구일까. 이번 연극이 놓친 포인트다.

1만5000∼2만5000원. 17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02-762-0010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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