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헌법 초안 ‘인민’ → ‘국민’ 바뀐 사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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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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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 헌법/차병직·윤재왕·윤지영 지음/536쪽·1만5000원·지안

2001년 가을 광주 충장로에서 극장을 운영하던 최모 씨는 재판을 받았다. 혐의는 ‘학교보건법’ 위반. 법에 따르면 학교 200m 이내에서는 학생들에게 유해하다고 생각되는 영업을 못하도록 돼 있는데, 최 씨의 극장은 인근 유치원 정문에서 19m 떨어져 있었다.

재판을 맡은 판사는 학교보건법이 헌법 제15조 ‘모든 국민은 직업선택의 자유를 가진다’는 조항에 위배된다며 헌법재판소에 넘겼고 2004년 5월 위헌 판결이 나왔다. 법은 즉시 개정되어, 학교보건법 6조에서 ‘극장’은 삭제되었다.

저자들은 독자들이 헌법을 꼭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헌법이 일상과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위의 사례는 그 한 예이다. 저자들은 “나의 생각과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나 자신인 것 같지만, 그 결정은 국가의 정책이나 제도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며 “헌법은 가장 바깥쪽의 테두리”라고 말한다.

이 책의 부제는 ‘헌법 교양서’다. 책은 130개 헌법 조항을 소개하고 해설을 붙였다. 각 조항과 실생활에 관련된 사례, 조항에 얽힌 역사, 위헌 결정들을 소개한다.

헌법 제1조 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이다. 저자들은 “여기서 ‘국민’이라는 용어는 광복 직후 법학자 유진오가 헌법 초안을 만들 때는 ‘인민’이었다”고 말한다. 북한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국호로 정하고 우리가 대한민국으로 국호를 변경하면서 인민이 국민이 된 것이다. 저자들은 “국민은 국가의 구성원이라는 의미가 강해 국가 우월적 느낌은 주는 반면, 인민은 국가라도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자유와 권리의 주체로서의 인간을 표현한다”고 말한다.

저자들은 헌법 12조 3항 ‘체포, 구속, 압수 또는 수색을 할 때에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해야 한다’는 조항을 음주단속의 문제점과 연관짓는다. 심야에 도로를 막고 무차별하게 실시하는 음주단속은 불쾌감을 일으키는데, 헌재는 1997년 3월 현행 음주단속 방식이 사람에 대한 강제처분이 아니라고 결정했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음주측정에 불응하면 그 자체로 처벌할 수 있는데, 이는 간접 강제처분에서는 영장이 필요 없다는 것이냐”며 헌재 결정을 비판한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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