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역들 1. 서울 교외선 온릉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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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24일 12시 00분


서울교외선. 장흥역을 출발한 통일호 열차가 온릉역을 향해 출발했다. 철길 너머 노고산과 북한산의 풍광이 그림처럼 펼쳐졌다. 터널에 진입한 열차가 밖으로 나오자 멀리 도봉산 오봉능선도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온릉역에 도착했다는 신호다. 단출한 3량짜리 열차의 꼬리가 터널을 다 빠져나왔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로 역은 터널과 가깝다.

열차가 멈추고 인근 유원지를 찾아온 행락객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역은 역사도 변변한 승강장도 개찰구도 없다. 역명과 운행 시간표가 적힌 판자와 이정표만 자갈 깔린 승강장에 덩그러니 서 있다. 사람들이 ‘알아서’ 내리고 타면 열차는 다시 의정부를 향해 육중한 몸을 움직인다. 서울교외선의 11개 역중 가장 단출했던 온릉역의 2004년 4월 1일 이전 모습이다.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일영리 산 17번지 서울교외선 온릉역. 인근에 위치한 조선 중종(中宗)의 원비(元妃) 단경왕후(端敬王后) 신씨(愼氏)의 능인 온릉에서 역명을 따 왔다. 현재 이곳에 여객 열차는 다니지 않는다. 2004년 3월의 마지막 날 통일호 열차의 퇴역과 함께 온릉역의 시간도 멈춘 것이다. 온릉역에 연결된 인근 채석장의 자갈 채취선도 함께 콘크리트에 묻혔다.


2004년 10월 교외선 야간 관광 열차가 운행을 재개했지만 이곳에는 서지 않았다. 그마저도 적자누적으로 운행을 멈췄다. 지금은 화물열차와 군용열차가 간간이 지나가며 선로에 뿌리를 내리려던 잡풀의 씨를 훑어간다. 그리고 과거 인근 유원지를 찾아온 사람들의 발길이 무수히 닿았을 간이 승강장에는 역명과 시간표가 적힌 폴 싸인 대신 강아지풀이 무성하게 자라있다.

주변의 빼어난 풍광으로 유원지들이 밀집한 서울교외선은 70,80년대 수도권 주민들의 쉼터로 그리고 대학생들의 MT촌으로 각광받았다. 노고산과 북한산 계곡을 둘러 도는 철길은 경춘선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온릉역에 간이승강장을 설치한 것도 행락객들을 위해서였을 터. 하지만 90년대 들어 행락문화가 다양화되고 교통이 발달하면서 주변 유원지들이 쇠락의 길을 걷고 이용객이 감소하자 교외선과 함께 온릉역도 추억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온릉역 인근 신흥유원지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김하영씨(70)는 “봄이면 수십 명씩 무리지어 내리고 타는 대학생들로 간이 승강장이 꽉 찼었다”며 그때의 모습을 회상했다. “하지만 지금은 사통팔달 도로와 열차보다 안락한 차가 있는데 굳이 필요 있겠느냐”는 말도 덧붙였다.

교외선을 따라 시원하게 뻗어 있는 4차선 39번 국도에는 차들이 시원하게 내달린다. 다른 기차 노선의 절반 수준인 50km의 속도로 거북이 운행을 하던 교외선 통일호 열차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온릉역 바로 위에도 39번 국도가 있다. 차도에 차들은 시원하게 내달리지만 국도아래 온릉역은 그림처럼 고요하다. 주변의 온릉처럼 온릉역의 시간의 문도 굳게 닫혀 있다. 속도에 밀린 간이역이 또 하나 사라지고 있다.

이철 동아닷컴 기자 kino2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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