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 ‘사회’로 눈을 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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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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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션-칙릿 등 가벼운 소재 탈피
분단-이주노동자-이념 문제 다뤄
“촛불 등 굵직한 이슈 부각 탓”


문화 웹진 ‘나비’에 17일 연재를 마친 소설가 김선우 씨(39)의 ‘캔들 플라워’는 지난해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를 소재로 한 장편소설이다. 소설가 장정일 씨(47)가 이달 발표한 장편 ‘구월의 이틀’ 역시 지금까지 그가 다뤘던 작품과는 결이 사뭇 다르다. 좌·우파 대립이라는 이념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이 작품은 노무현 정부 당시의 탄핵정국을 주된 배경으로 했다.

최근 국가권력이나 이념 대립 문제, 이주노동자나 탈북자의 현실 등 사회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문학 작품들이 잇달아 나오고 있다. 국가, 사회 등에 관한 거대담론보다 팩션이나 칙릿(젊은 여성을 겨냥한 소설) 등의 기발한 소재, 형식이나 언어 실험에 집중했던 한국문학이 변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와 정치 등에 대한 작가들의 관심은 직접적인 현실 체험기에서부터 우회적인 반영에 이르기까지 다채롭다.

소설가 전성태 씨(40)는 소설집 ‘늑대’에서 현실에 대한 다양한 관심을 보여준다. 몽골의 북한식당에서 벌어진 소동을 통해 분단국가의 현실을 성찰하거나(‘남방식물’), 이국적인 외모 때문에 놀림 받던 주인공이 원어민강사 행세를 하게 되는 역설적인 상황을 통해 이주민 혼혈인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지적한다(‘이미테이션’). 청각장애학교의 성폭행사건의 통해 지배권력의 담합과 부패를 비판한 공지영 씨(46)의 ‘도가니’, 통일 이후 한국사회의 모습을 디스토피아적으로 묘사한 이응준 씨(39)의 ‘국가의 사생활’ 역시 선 굵은 사회문제를 다뤘다.

소시민의 일상과 애환을 주로 다루던 젊은 작가들도 정치 현실이나 작가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좀 더 적극적인 고민을 담아내기 시작했다. 소설가 박상 씨(37)는 계간 문예지 ‘문학과 사회’ 가을호에 발표한 단편 ‘득템’에서 뱀파이어 화자의 시선으로 시위 현장의 아수라장을 풍자했다.

출판사 문학동네 네이버 카페에서 기지촌을 배경으로 한 장편소설 ‘리틀 시카고’를 연재 중인 소설가 정한아 씨(27)는 “최근 발생한 여러 가지 사회문제를 보며 불합리한 현실이 극단에 왔다는 느낌을 받았고 작가의 역할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됐다”고 밝힌다. 이어 “작가라면 소설을 통해 강자의 논리나 물질(돈) 가치로 단순화돼 버린 사회를 보여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작가들이 국가, 사회, 공동체 등의 거시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00년대 이후 한국문학이 주로 미학적인 새로움을 추구하며 사회, 정치 현실에서 벗어나 있었던 데 대한 반성과 반작용이 영향을 미쳤다. 문학평론가 강유정 씨는 “1990년대부터 작가나 문학은 정치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세련되고 미학적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며 “최근 들어 미학적 전위뿐 아니라 문학의 사회적 정치적 상상력에도 다시 주목하게 된 것”이라고 말한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 용산 철거민 참사 등 지난해부터 계속된 사회 이슈들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사회현실에 대한 작가들의 문제의식이 ‘문학의 정치성’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지자 이에 대한 비평들도 활발해졌다. 계간 ‘문학과 사회’ 2009년 겨울호의 ‘다시, 미학과 정치를 사유하다’, ‘창작과 비평’ 2009년 겨울호의 ‘우리 시대 문학담론이 묻는 것’ 등 주요 계간지들이 이 문제를 잇달아 특집으로 다뤘다.

하지만 작품 자체로서의 미학을 고려하지 않은 채 단순히 현실만 보여줄 경우 소재주의의 한계에 빠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문학평론가인 김미현 이화여대 교수는 “좋은 문학작품은 늘 유연하게 정치적 사회적 맥락을 반영해 왔다”며 “현장 체험기처럼 소재적인 수준으로 문학의 정치성을 이해하는 것은 우려스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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