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그곳에 가면 사람냄새 물씬” 도심 뮤직바의 위로

  • Array
  • 입력 2009년 11월 13일 03시 00분


코멘트
어린 시절 잠결에서도 외워 부를 수 있던 만화영화 주제가, 첫사랑과 함께 들었던 그 노래, 그리운 이들이 즐겨부르던 애창곡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음악과 그에 얽힌 아름다운 추억들이 있다. 그래서 음악은 추억의 매개체다. 흐릿해진 기억에 다시 색깔을 입히고 그 기억을 보다 선명하고 때론 더 깊게 남겨 놓는 일종의 연결 고리와 같은.

깊어가는 가을, 당신은 어떤 음악을 통해, 어디서 또 어떤 추억을 만들어 가고 있는지…. 빛바랜 추억과 음악이 그리울 때 도심 속 뮤직바를 찾는 것은 또 다른 의미의 일탈이다. 음악이 주인공인 그곳, 장르도 취향도 모두 제각각이지만 다양한 뮤직바의 세계는 의외로 우리 일상 가까이에 있다.

○ 그곳, 국내외 유일 아카펠라 바

“아, 저기 뒷줄 일행분, 가족이 함께 오셨군요. 엄마 아빠랑 함께 온 우리 어린이는 이번 크리스마스 선물로 뭘 받고 싶어요?” “맛있는 육포요!(이어 터지는 관객석의 웃음보)” “그럼 육포를 받고 싶은 이 특별한 어린이를 위해 오늘은 캐럴을 미리 불러줄게요, 11월의 ‘미리 크리스마스∼!’” 이어지는 5인 혼성 아카펠라 그룹 ‘폴리포니’의 경쾌한 징글벨 화음 그리고 박수갈채.

8일 일요일 저녁 찾은 서울 대학로의 ‘두잇 아카펠라’ 바에서는 특별한 미니 콘서트가 한창이었다. 20여 평 남짓한 허름한 공간, 그리고 소박한 조명과 무대. 이곳에서는 무대와 객석이라는 개념 자체가 무색하다. 모두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그날의 ‘특별한 주인공’이 된다. 공연 팀과 관객은 공연 중간 중간 서로 자유롭게 대화하고 즉석 공연도 함께 펼친다. 이날 남편과 함께 온 한 중년 부인을 위해서는 듀오 ‘4월과 5월’의 ‘장미’가 불려졌다. “은주에게선 꽃내음이 나네요, 잠자는 나를 깨우고 가네요, 싱그런 잎사귀 돋아난 가시처럼 어쩌면 은주는 장미를 닮았네요∼”

부부의 양해(?)를 구한 뒤 폴리포니가 특별히 그녀만의 이름을 넣어 개사한 ‘장미’의 감미로운 선율이 무대를 가득 채운다. 미소를 가득 머금고 있는 남편과 수줍어하는 부인, 중년 부부의 늦가을 일요일 밤은 충분히 행복해 보였다. 소박한 공간이지만 ‘두잇 아카펠라’는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유일한 아카펠라 전용 뮤직바로 알려져 있다.

일요일마다 무대에 서는 이곳 전속 5인 혼성 그룹 ‘폴리포니’처럼 일반 직장인들끼리 모여 결성한 아마추어 아카펠라 그룹에서부터 국내에서도 여러 CF 곡(‘I Sing, You Sing’ 등)을 통해 유명해진 스웨덴의 ‘리얼 그룹(The Real Group)’까지 국내외 유명 아카펠라 그룹에 이곳은 친숙한 곳이다. 해외 유명 아카펠라 그룹들도 방한하면 꼭 한번쯤 들르는 곳이라고.

두잇 아카펠라의 변상조 사장은 “악기나 별도의 장비 없이 목소리 하나로 아름다운 화음을 낼 수 있다는 게 아카펠라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나 아카펠라는 특정 음악 장르가 아닌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아름다운 사람의 목소리로만 소화할 수 있는 일종의 표현 기법”이라며 “과거 교회 무반주 합창곡으로만 알려졌지만 요즘은 가요나 트로트는 물론 국악도 아카펠라라는 표현 기법을 통해 독특한 화음으로 재해석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화려하지 않지만 특별한 화음이 어우러진 그곳. 사람 냄새가, 추억이 그리운 날이면 기억해볼 만하다. 자세한 공연일정 및 약도는 www.abar.co.kr 참조. 02-766-7085

글=김정안 기자 jkim@donga.com

디자인=공성태 기자 coonu@donga.com

그 시절 록이 그리워지면…

○ 60, 70년대 록의 향수가 머무는 곳 ‘라커스’


“종로에 라커스(ROCKERS)라는 1960, 70년대 로큰롤(rock’n’roll) 바가 있어요. LP판을 직접 틀어주는 먼지 냄새나는 그런 곳?”

장르와 무관한, 괜찮은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뮤직바를 소개해 달라는 부탁에 한 후배는 그렇게 말했다.

먼지 냄새라…. 왠지 타임머신을 타고 수십 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은 착각이 드는 곳이라는 뜻이었을까. 부슬거리는 가을비가 내리던 수요일(4일) 저녁, 그곳을 찾았다. 어두컴컴한 실내조명, 한쪽 벽을 가득 채운 CD와 LP판 그리고 20여 평 남짓한 공간의 벽면을 촘촘히 채우고 있는 디스크 재킷들. 밥 딜런, 비틀스, 핑크 플로이드, 도어스….

‘록의 전설’들로 벽면은 가득하다. 카운터 바 구석에 자리 잡은 주인 정승환 씨의 손은 내내 분주했다. 10년째 이곳에 터를 잡고 있다는 그는 ‘왜 60, 70년대 록 음악이냐’는 질문에 “그걸 듣고 자랐고, 그 노래들이 좋고 또 함께 즐기는 이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함께 간 친구가 신청한 스모키의 1976년 싱글 앨범 ‘Living Next Door To Alice’의 경쾌한 리듬이 흐르기 시작하자 카운터 한쪽에 앉아 선곡 작업에 분주하던 그의 손길도 좀 한가해진 것 같다.

“(기자) 신청곡들은 어떤 순서나 취향대로 틀어주시나요?”

“(정 씨) 제 맘이에요. 물론 듣고 싶다는데 안 틀어줄 수 있나요(웃음). 하지만 가급적이면 그날 분위기에 맞추려고 하지요.”

“어떤 손님들이 주로 오죠?”

“20, 30대 젊은 친구들이 의외로 많이 오는 편이에요. 그런데 10년 전보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제대로 놀 줄을 모르는 것 같아요. 그냥 가만히 앉아 있어도 즐거워 깔깔거리던 그런 예전 세대의 모습보다는 뭐랄까 조금 더 진중하지만 소극적이랄까….”

그는 “치열한 취업 경쟁에 학부제로 인한 학점 부담 등 여러 외부적인 요인들이 요즘 젊은 친구들을 무겁게 하는 것 같다”고 쓴소리를 했다. 그런 이들이 쉬어갈 수 있는, 경쾌해질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한다는 기대로도 들렸다.

옆에 있던 10년차 단골 이영준 씨(31)가 한마디 거든다. “여기서 듣는 음악은 일종의 보양식과 같아요. 그냥 여기서 가만히 앉아 음악을 듣다보면 리듬에 맞춰 고개가 까딱거려지고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되는 그런 곳?” 서울 종로구 관철동 5-6. 탑골공원 사거리 청계천 방면. 02-2265-7689


올드&뉴 팝 리듬에 맞춰…

○ 음악이 놀이가 되는 그곳, ‘소셜 클럽’


봄이 다시 오려나. 포근한 토요일(7일) 저녁이다. 몇몇 친구들과 함께 이번엔 신사동 ‘소셜 클럽’을 찾았다. 최근 오픈해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팝과 일레트로닉을 즐기는 이들 사이에서는 요즘 입소문이 꽤 난 곳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터였다.

반지하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띄는 검은 벽면의 문구는 ‘The Night is Still Young(아직은 초저녁)’. 50여 평 남짓한 공간, 테이블과 테이블 사이 아무런 칸막이도 벽도 존재하지 않는다.

‘함께 어울리는 곳’이라는 의미의 상호(‘소셜 클럽’)처럼 이곳은 조용히 앉아 음악을 듣고 혼자 머물다 가고 싶은 이들에게는 추천하기 꺼려지는 장소다. 담배 연기에 익숙지 않은 이들에게도 금물.

1980년대부터 최신까지의 팝과 일렉트로닉이 주요 장르. 평일 한가한 저녁 시간대면 장르에 구분 없이 신청 음악도 들을 수 있지만 주말은 주로 DJ들이 여는 미니 콘서트 겸 댄스 파티로 채워지기 때문이다.

9월 이곳을 오픈한 김승수 사장(32)은 “옛날 시골 마을 잔치에 가면 맛있는 음식도 함께 나누고 흥에 겨우면 서로 잘 모르던 이웃 동네 사람들까지 한데 어울려 잔치 마당, 춤 마당이 펼쳐지곤 했다”면서 “그런 곳처럼, 또 유럽이나 일본 곳곳의 라운지 바처럼 푸근하면서도 편하게 음악과 함께 흥얼거리고 춤추다 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이어 “1980년대 조용필과 김완선, 90년대 뉴키즈온더블록(New Kids on the Block)의 지나간 곡들만 듣는다면 촌스러운 듯한 느낌이 들 수도 있지만 이곳에서는 최신 팝 유행 곡들과 ‘믹스 앤드 매치’해 들을 수 있다”면서 “DJ가 어떤 순으로 선곡해 매칭하느냐에 따라 묘한 매력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곳을 자주 찾는다는 직장인 이장혁 씨는 “가로수 길의 현대적 분위기와 다르게 DJ가 오래된 가요와 올드 팝을 최신 곡과 함께 선곡하는 분위기가 무척 신선하다”며 “얼마 전엔 마이클 잭슨의 전곡을 틀어줬는데 첫사랑의 추억에서부터 해적판 LP를 구하러 다닌 이야기까지 함께 온 이들이 각자 음악에 담긴 서로의 사연을 나누며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즐거웠다”고 말했다.

지난달 핼러윈 파티에 이어 연말연시에는 각양각색의 파티도 준비 중이다. 별도의 드레스 코드는 없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 중간 세븐일레븐 맞은편. 02-516 8505

김정안 기자 ki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