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속 창작공간, 문인들 갈증을 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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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0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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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연희창작촌’ 내달 개관

국내 예술창작공간 대부분 시각-공연 예술가 중심 지원
지방 문학관 창작집필실은 교통불편-일상과 격리 단점
서울 도심 첫선 ‘연희창작촌’ 3대1 경쟁 뚫고 19명 입주

서울 도심 속에 마련된 창작의 산실, 연희문학창작촌 전경(①). 작가 19명이 입주하는 창작집필실 내부(②). 창작촌 내부에는 공동휴게실, 미디어랩 등 다양한 부대시설(③)도 함께 마련됐다. 전영한 기자
서울 도심 속에 마련된 창작의 산실, 연희문학창작촌 전경(①). 작가 19명이 입주하는 창작집필실 내부(②). 창작촌 내부에는 공동휴게실, 미디어랩 등 다양한 부대시설(③)도 함께 마련됐다. 전영한 기자
《버려진 공장이 미술과 공연예술의 산실로, 재래시장이 공예공방의 터전으로 진화하고 있다. 쇠락한 산업공간의 유산들을 예술창작 공간으로 변화시키는 아트팩토리(Art Factory) 조성 사업이 활발해지면서 전국 곳곳에 예술가들을 위한 레지던스 창작공간이 들어서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공연과 미술 분야이고 문학은 소외되어 왔다. 이 같은 상황에서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 연희문학창작촌이 11월 5일 문을 연다. 서울시사편찬위원회 건물을 개조한 문학창작공간으로 문인들만을 위한 창작공간이 도심 속에 생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지 6915m²에 연면적 1480m². 4개 동에 집필실 20개, 공동휴게실, 미디어랩 등이 마련됐고 마당엔 산책로도 조성돼 있다. 소설가 은희경 권지예 씨, 시인 신달자, 이시영 씨 등 19명의 작가들이 입주할 예정이다.》
○부족한 창작공간, 치열한 경쟁

현재 국내에서 작가들이 이용할 수 있는 창작공간은 연희문학창작공간을 포함해 모두 8곳. 이 가운데 문학만의 창작공간은 3곳이다. 부산의 ‘아트팩토리 숨 레지던스’나 인천의 ‘아트플랫폼 레지던스 프로그램’처럼 문인들을 일부 모집하더라도 시각예술, 공연예술이 중점적인 곳이 더 많다.

그동안 작가들이 실질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창작공간은 강원 원주시의 토지문화관과 강원 인제군 백담사 만해마을의 문인창작집필실 두 곳이었다. 이마저도 입주를 원하는 작가에 비해 제공할 수 있는 공간은 부족하다. 각각 2001년, 2004년 이후부터 한 해 40∼50여 명의 작가에게 3, 4개월씩 무료로 창작공간을 제공하는 이곳의 평균 경쟁률은 3 대 1 정도. 토지문화관 권오범 사무국장은 “생활과 단절된 조용한 공간을 찾는 분들이나 전업 작가들이 늘면서 입주를 원하는 작가들이 매년 늘고 있지만 공간이 한정돼 선별해서 기회를 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새로운 대안, 도심 속의 문학창작촌

지방자치단체나 문화재단 등의 예술창작 공간 확보와 예술가 지원이 본격화되면서 올해 서울만 해도 금천 아트팩토리, 신당 창작아케이드 등 예술창작공간이 신설됐지만 문인을 위한 공간은 연희문학창작촌뿐이다. 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지원컨설팅센터의 통계에 따르면 국내 예술가들도 지원할 수 있는 해외 레지던스 공간 393곳 가운데 문학 부문이 포함된 곳은 144개(36%). 문학창작을 포함하는 비율이 국내보다 훨씬 높다는 것을 보여주는 수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연희문학창작촌처럼 도심 속에 새로운 문학창작촌이 생기기를 바라는 작가가 많다. 지방의 문학관에서 운영하는 창작집필실은 주로 외지에 있어 도심과 거리가 멀고 교통이 불편해 집필 외의 다른 활동은 거의 병행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기 때문이다.

연희문학창작촌의 경우 도심이라는 지리적 이점 때문에 입주 경쟁률이 3 대 1을 웃돌았다. 서울문화재단 창작공간추진단의 한정희 씨는 “전국 문인 중 상당수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살고 있음에도 이 지역에 창작공간이 마련돼 있지 않았다”며 “출퇴근이나 일상생활을 병행하며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이 절실한 작가들을 위해 공간을 제공해줄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문인들이 창작공간을 필요로 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박형준 시인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일상 시간과는 분리된 예술적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공간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문인들이 작업에 몰두할 수 있는 쾌적한 작업실을 따로 소유할 만큼 경제력이 있는 경우는 드물다. 박 시인은 “발상, 상상력, 창조력을 자극하고 고도로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한 걸 아쉬워하는 이가 많았다”며 “집필에 최적화된 환경을 제공해 주는 공간이 도심에 생긴 것은 특별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문화의 중심으로 떠오르는 창작공간

중국 베이징의 ‘따산즈798’, 일본 요코하마의 ‘뱅크아트1929’ 등 가난한 예술가들을 위해 지방자치단체 주도로 제공된 예술창작 공간이 관광객 유치 등에 성공한 사례는 적지 않다. 접근하기 쉬운 도심에 마련된 연희문학창작촌은 야외무대와 회의실 등이 따로 마련돼 있어 지역주민이나 독자들과의 만남, 강연회 개최를 위한 문화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지방에서도 문화체험 공간의 일환으로 문학창작실을 준비하고 있다. 조정래 씨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에서 경찰토벌대장과 대원들의 숙소로 등장하는 전남 보성군 벌교읍의 보성여관은 보수를 끝낸 뒤 내년 하반기부터 작가들의 창작 공간과 문화체험 공간으로 사용할 예정이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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