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맨얼굴’ 20선]<3>음악가와 연인들

  • 입력 2009년 9월 11일 02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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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가와 연인들/이덕희 지음/가람기획

《“나는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아요, 또한 당신 이외엔 아무도 나를 사면해줄 수 없는 일들을 나는 고백하고 싶소. 아아, 단 15분만이라도 당신과 함께 있을 수 있다면, 친애하는 부인이여. 그래서 나의 온갖 슬픔을 쏟아놓고 당신에게서 위안을 받을 수 있다면!”(하이든이 연인인 겐칭거 부인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이룰 수 없는 사랑의 랩소디

역사에 이름을 남긴 유명 음악가 13인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음악의 아버지라는 칭호 때문에 연인의 이미지를 상상하기 힘든 요제프 하이든도 수많은 여인과 사랑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헝가리 광시곡’으로 유명한 프란츠 리스트는 잘생긴 외모와 강철같이 강인한 몸 때문에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귀부인들의 공략 대상이었다.

‘음악가와 연인들’이라는 제목은 사랑이 불러일으키는 낭만과 예술가의 영감을 연상시키지만 그들의 사랑 자체는 작품처럼 이상적이거나 매끄럽지 않았다.

하이든은 1760년 가발 제조업자의 딸 마리아와 결혼하는데 그가 진정으로 사랑한 이는 마리아의 여동생 테레제였다. 테레제가 수녀원으로 떠나자 하이든은 가정과 아내가 필요했던 상황 속에서 수동적으로 마리아와 결혼하는 운명이 된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도 알로이자와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그녀의 동생 콘스탄체와 결혼하는 아픔을 겪는다. 피아노 연주가 끝날 때면 흥분해서 비명을 지르고 이따금 기절하는 숙녀들을 팬으로 둔 리스트 역시 첫사랑 카롤린 드 생 클릭과의 사랑은 이루지 못했다.

풍부한 감성을 가진 음악가들의 사랑이 열정적이고 광적인 것은 분명했다. ‘환상교향곡’으로 유명한 프랑스 후기 낭만주의 작곡가 헥토르 베를리오즈는 짝사랑으로 시작한 사랑을 평생 가슴에 품고 살았다. 감수성이 넘쳐났던 그는 아름다운 음악을 들을 때 나타나는 현상을 사랑을 할 때도 느꼈다.

“처음에 관능의 대환희를 맛보고, 점차 전신의 고통을 느끼다가 압박이 되고, 드디어 전율로 변하여 이따금 실신하기도 하는 일종의 경련이 일어난다.”

음악가들의 결혼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특히 하이든의 결혼은 재난에 가까웠다. 그의 부인 마리아는 싸우기 좋아하고 질투심 강하며 고집이 센 데다 주부로서의 소양도 없었다. 낭비벽도 심했지만 하이든이 무엇보다 참을 수 없었던 것은 그의 작품에 대한 그녀의 극단적인 무관심이었다.

하이든은 47세 때 18세 연하의 유부녀 루이자 폴첼리와 연인이 되어 21년이나 관계를 지속한다. 동시에 가정적 따뜻함과 위로를 주었던 마리안 폰 겐칭거 부인과는 속마음을 드러내는 편지를 자주 주고받았다. 좀처럼 사적 감정을 드러내지 않던 하이든이었지만 그녀와의 편지에서는 자제력의 고삐를 풀어 그 편지는 오늘날 하이든을 연구하는 주요 사료가 됐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 니콜로 파가니니, 프레데리크 쇼팽, 주세페 베르디, 요한 슈트라우스, 요하네스 브람스, 자코모 푸치니,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엔리코 카루소의 ‘사랑의 맨얼굴’도 나온다.

질곡이 많았던 사랑을 겪지만 ‘사랑과 예술은 분리시킬 수 없는 것’이라는 이사도라 덩컨의 말처럼 그들의 사랑은 수많은 음악을 탄생시키는 힘이 되었다. 하이든은 첫사랑 테레제를 위해 ‘살베 레지나’ ‘C장조 오르간 협주곡’을 만들었고, 모차르트는 오페라 가수였던 첫 사랑 알로이자를 위한 특별 아리아를 수도 없이 만들었다.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은 그의 사랑에 응답하지 않던 연인 해리엇 스미드슨을 향한 고뇌와 절망의 산물이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었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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