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성장판 닫히기 전에 쑥쑥 컸으면…”

  • 입력 2009년 8월 28일 02시 59분


■ 양·한방 성장클리닉에 가보니

여진(가명·11)이는 조금 작고 통통한 아이다. 초등학교 5학년이고 가슴이 나오고 있다. 키는 135cm. 또래 여자아이들 평균 키보다 10cm 정도 작다. 여진이 키가 걱정된 어머니가 성장클리닉을 찾았다.

“여진이가 1학년 때 116cm였고 2학년 때는 5cm 큰 121cm였어요. 3학년 때는 겨우 2cm 자랐고요. 4학년 5학년 때는 5, 6cm 정도 자랐는데 그래도 작죠. 3학년 때 왔어야 하는데, 겁나서 못 왔었어요. 요샌 가슴이 좀 많이 나오는 것 같아요. 키도 작은데 사춘기가 빨리 진행되어도 괜찮나요 ?”

“운동은 많이 하고 잘 먹나요?”

“수영을 꾸준히 했어요. 3학년 말, 4학년 초에 많이 먹어서 살쪘어요.”

“가슴은 언제쯤부터 나왔나요?”

“3개월 전부터인 것 같아요.”

“여진이랑 같은 10년 4개월 된 아이들 키는 평균 145cm, 몸무게 38kg 정도예요. 여진이의 경우 키가 평균보다 10cm 작고 체중은 5kg 정도 더 나가는 편이죠. X선을 보니 뼈 나이는 지금 나이와 비슷해서 늦자랄 타입은 아니고요. 가슴이 빠르게 나오고 있어서 1년 후엔 초경을 할 것 같아요. 가슴 나오고 초경을 할 때까지 잘 자라야 8cm니까 135에 8 더하면 143cm죠. 초경 후엔 5, 6cm 더 크니까 앞으로 잘 자라야 150cm를 조금 넘지 않을까 싶은데요.”

잘 자라봤자 150cm를 간신히 넘을 것이라는 말에 어머니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방법이 없을까요? 전 최선을 다하고 싶은데….”

○ 수만 명 약물치료 추산

키 키우기 열풍이 거세지고 있다. 성장호르몬, 한약 등 약물뿐 아니라 성장보조제, 운동기구 등 키 키우기 의료 서비스와 제품이 성황이다. 2006년 기준 성장호르몬 치료를 받는 아이들의 수는 공식집계에 따르면 5000여 명. 크고 작은 개인 병원에서 치료받거나 ‘키 크는 한약’을 먹이는 사례까지 합치면 이보다 훨씬 많은 아이들이 약물의 도움을 받아 키를 키우는 것으로 추산된다.

인제대 상계백병원 성장클리닉 박미정 교수팀이 대한소아과학회지 최근호에 게재한 논문에 따르면 성장클리닉을 방문한 아동 823명(남 416명, 여 407명) 중 한의원에서 성장 촉진 한약을 먹은 아이는 37.8%였다. 성장호르몬 치료를 받은 경우(2.9%)보다 13배 정도 많다. 성장보조제를 먹거나 먹었던 아이도 37.8%나 됐다. 종합비타민·무기질제를 먹는다는 대답이 32.6%로 가장 많고 영양제와 생약성분의 성장보조제 23.9%, 단일 칼슘제 19.1%, 클로렐라 7.7%, 초유 6.7% 등이다.

아이들이 원하는 키는 남자 181cm, 여자 169cm다. 한국인 성인 남녀의 평균키보다 8, 9cm나 더 크다. 부모들은 조금 눈을 낮춰 남자 178cm, 여자 165cm 정도를 원하지만 역시 평균키보다는 큰 수준. 2007년 기준 20세 성인남녀 평균 키는 남자 174cm, 여자 161cm이다.

○ 성장 치료 받아야 돼, 말아야 돼?

부모들은 아이들이 7.7세가 되면 키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학교 활동을 시작하는 나이다. 아이가 또래보다 작으면 3, 4년간 지켜보며 한약도 먹이고 성장보조제도 먹여 보다 초등학교 4학년 무렵인 만 10세가 됐을 때도 너무 안 큰다 싶으면 병원을 찾는다. 처음 하는 질문은 대개 “정상적으로 잘 자라고 있는 건가요?”이다. 키는 한때 자라고 나면 더는 자라지 않으니까 시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우려 때문에 초조하다.

성장클리닉을 찾으면서도 부모들은 효과를 100% 확신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특히 한약의 경우가 그랬다. 1년 넘게 아들에게 한약을 먹이고 침 치료를 받게 하고 있는 한 어머니는 “여기 온 후 10cm 정도 자랐는데 한약 덕분인지 자연스럽게 큰 건지 모르겠다”며 “그렇다면 약이라도 먹이는 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단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부모들도 안다. 잘 먹고 잘 뛰어놀고 잘 자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아이들이 무럭무럭 큰다는 것을. 하지만 환경이 이를 뒷받침해주지 않는다는 생각에 안타까운 것이다.

이번에 세 번째 한약을 지어간다는 한 어머니는 “집에서 영양보충 충분히 하고 운동하면 되지 않느냐”는 말에 “그걸 몰라서 못 하나요? 아는데도 못하는 거죠. 요새 애들이 운동할 시간이 어디 있어요. 밥도 편식하기 일쑤고. 생활습관 식습관 고치기가 힘드니까 약 먹는 거죠”라며 퉁명스레 대답한다.

한창 쑥쑥 자랄 나이에 운동할 시간이 없어 키가 크지 않고, 그것을 보충하느라 약이나 성장보조제를 먹는다니, 앞뒤가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글=김현지 기자 nuk@donga.com

디자인=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 사춘기 한해 4cm 못 자라면 클리닉 도움을 ▼

성장클리닉은 양방, 한방 양쪽 모두에 있다. 아이들이 얼마나 클지 예측하는 방법은 비슷하지만 치료법은 다르다. 양방은 성장호르몬과 사춘기 억제제를, 한방은 성장촉진용 한약과 침을 이용한다.

○ 양방은 성장호르몬, 한방은 한약과 침 사용

재혁(가명·11)이는 인제대 상계백병원 성장클리닉에서 3개월째 성장호르몬 치료를 받고 있다. 재혁이 키는 147cm에 몸무게 40kg으로 평균보다 키와 몸무게가 5cm, 5kg 정도 미달이다.

재혁이는 “175cm 정도 컸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고교 1년인 누나가 157cm라 조금 작은 편인데 누나처럼 작을까봐 걱정이다. 재혁이는 매일 저녁 자기 1시간 전에 자기 혼자 성장호르몬 주사를 놓는다. 주사 놓는 게 무섭지 않느냐고 묻자 “팔 다리에 놓는 건 안 무서운데 배에 놓는 건 조금 무서워서 혼자 못 놓는다”고 말했다. 재혁이 어머니는 “약값이 한 달에 100만 원 넘는 것 같다”며 “그래도 크는 건 한때니까…”라고 말했다. 1년 치료비용이 1000만 원을 훌쩍 넘는다. 성장호르몬 약값은 체중, 연령, 사춘기 단계, 성별을 고려한 약물 필요량에 따라 달라진다. 일반적으로 40kg 기준 한 달 치 약값은 90만원 정도이나 조금 더 들기도, 덜 들기도 한다.

같은 시각 진영이(14·서울 강동구 고덕동)는 동서신의학병원 한방 성장클리닉에서 무릎과 발목, 새끼발가락 등에 침을 맞고 있다. 진영이는 벌써 1년 동안 침 치료를 받았다. 침 치료는 일주일에 한 번, 15∼20분이 소요된다. 한약은 중간 중간 2, 3달 먹었다.

진영이 어머니도 진영이가 175cm까지 컸으면 좋겠다. 예상키는 170cm으로 나왔는데 조금 욕심을 냈다. 평소에 칼슘·아연·마그네슘 영양제도 챙겨준다.

이 병원에서 침을 맞는 데는 한 번에 2만5000∼3만 원이 든다. 1년이면 144만 원이다. 한약은 1개월 치가 40만 원이다. 한약은 대개 두 달 먹고 한 달 쉰다. 1년간 한약을 두 달 치 처방 받고 침을 맞았다면 224만 원이 든다.

진영이 어머니가 한방을 선호하는 이유는 성장호르몬 치료보다 저렴하고 부작용도 덜 할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그는 “침이나 한약이 정말 효과가 있는 건지 모르겠는데 침 맞는 게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성장호르몬 부작용보다는 낫다”고 말했다.

○ 유전 영향이 75∼90%, 나머지는 환경적 요인

이렇게 인위적으로 키를 키우는 것은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박미정 상계백병원 성장클리닉 교수는 “성장호르몬의 도움을 받았을 때는 원래 자랄 키보다 1년에 3, 4cm 가량 더 자란다”고 말한다. 성장호르몬이 부족해 자라지 않았던 경우엔 효과가 확실하다. 2, 3년 주사해 7, 8cm까지 키운 사례가 있다.

박 교수는 꼭 약물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잘 먹고 운동하고 스트레스 적게 받는 좋은 환경에서 자라도록 배려하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10cm는 더 클 수 있다고 덧붙였다. 대개 키의 유전 성향은 75∼90%까지로, 나머지는 환경적 요인이 좌우한다.

모든 아이들이 약물을 통해 인위적으로 키를 키우려는 것은 자연스럽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은 일이다. 굳이 성장 클리닉을 가야할지 고려해볼 만한 경우는 △사춘기 끝나기 전 키가 매년 4cm 미만으로 자라는 경우 △몇 년 동안 학교에서 키 작은 순으로 세 번 째 안에 드는 경우 △몇 년 새 꾸준하던 키 성장 속도가 갑자기 뚝 떨어진 경우 △사춘기가 진행되고 있는데도 여전히 키가 몹시 작은 경우 △친가 외가 부모 형제 등 모든 가족이 키가 아주 작은 경우 등 5가지 정도다.

병원에 가려면 성장판이 닫히기 전에 가야 한다. 일단 성장판이 닫히면 키는 더 이상 자라지 않기 때문이다. 성장판이 닫히는 나이는 여자아이가 만 14∼15세, 남자아이가 16∼17세 정도다.

○ 키 자라게 하는 운동이 따로 있나요

성장클리닉에서 흔히 보이는 풍경은 또 있다. 진료 대기실에서 부모와 아이가 키를 놓고 말다툼을 벌이는 것이다. 한 어머니가 초등학교 6학년 된 아들을 꾸지람한다. “넌 농구도 싫어하고 줄넘기도 안 하고. 키 크는 운동 했으면 좀 더 컸을 거 아냐?” 아들이 항변했다. “자전거 탔잖아요.” 어머니가 다시 반박했다. “자전거 타기는 키 크는 데 도움 안 돼.”

성장에 도움 되는 운동이 있고 도움 안 되는 운동이 있을까. 전문의에게 물어보니 “특별히 어떤 운동이 성장에 도움 된다고 말할 순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달리기, 자전거타기를 비롯해 키 크는 데 도움 안 된다고 알려진 근력 운동도 성장호르몬 분비를 증가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주 3회 이상 30분 정도 꾸준히 운동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잘 노는 아이가 잘 큰다. 성장판은 물리적 자극을 주면 훨씬 더 활발하게 성장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아이 키 키우는 것에서라면 여러 가지 검증되지 않은 이야기들이 난무하는 바람에 ‘아는 것이 병’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은 현실이다. 아이 키를 키우고 싶다면 혹시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오히려 병이 되는 것은 아닌지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생각해 봐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김현지 기자 n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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