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 음악을 건축으로 표현한다면…

  • 입력 2009년 8월 26일 02시 55분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실내악 연주홀의 인조섬유 구조물은 무대 위에서 들려오는 음악을 시각으로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사진 제공 루크헤이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실내악 연주홀의 인조섬유 구조물은 무대 위에서 들려오는 음악을 시각으로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사진 제공 루크헤이스
‘동대문 파크’ 설계자 자하 하디드
뱀똬리 닮은 ‘실내악 연주홀’ 공개

음악은 물처럼 흐른다. 음악을 듣는 사람들은 정지한 사물이 아닌, 흐르며 움직이는 변화의 이미지를 얻는다. 31일까지 영국 맨체스터 아트갤러리에서 공개되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실내악 연주홀’은 음악의 흐르는 이미지를 담아낸 공간이다.

검은색 그랜드 피아노 한 대가 놓인 무대를 마주하고 가지런히 늘어선 검은색 객석들. m²당 무게가 150g 정도에 불과한 흰색 인조섬유 막이 그 무대와 객석을 휘어 감싸며 커다란 소용돌이를 그린다.

이 공간을 만든 건축가는 서울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파크’ 설계자인 영국의 자하 하디드 씨(59). 그는 동아일보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바흐의 실내악 작품이 전해주는 다채로운 느낌을 건축물의 형태와 구조에 반영하고 싶었다”고 했다.

면적 425m²인 이 연주홀은 맨체스터 국제 페스티벌 프로그램의 하나로 계획됐다. 우주선을 연상시키는 기이한 형태의 곡면 건축물로 알려진 하디드 씨의 스타일이 똬리를 튼 뱀의 꿈틀거리는 형상을 닮은 인조섬유 막에 잘 드러났다.

갤러리 천장에 금속 줄 여러 가닥을 매달아 지지한 이 구조물은 단지 시각적 이미지를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하디드 씨는 “갤러리로 사용하는 직육면체 공간 내부에서 발생할 음향 반사와 건물 안팎의 소음을 해결하는 것이 큰 과제였다”고 말했다.

“연주홀을 마련할 갤러리가 건물 뒤쪽 공간에 있기 때문에 전면의 큰길에서 들려오는 소음은 어느 정도 피할 수 있었죠. 그러나 건물 내부 온도와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24시간 가동하는 공조시스템의 소음이 문제였습니다. 갤러리 바로 옆방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500여 년 전 그린 스케치가 걸려 있기 때문에 ‘연주 시간에만 에어컨을 꺼 달라’고 할 수도 없었어요.”

소용돌이치는 인조섬유 막 구조물은 갤러리 내부의 원치 않는 반사음과 에어컨 소음을 줄이는 흡음재 역할을 한다. 무대 주위에는 연주 음향을 반사시킬 아크릴 패널을 설치했다. 인조섬유 막은 이 패널 장치를 관객의 눈에 띄지 않게 숨겨주는 역할도 한다.

하디드 씨는 ‘페스티벌 프로그램을 위한 일시적인 설비는 가급적 줄이고 싶다’는 건물주의 요청을 반영해 연주홀 경계를 표시하는 칸막이를 마련하지 않았다. 인조섬유 막 구조물이 무대와 객석, 통로를 구분하는 칸막이 역할까지 한다. 겹겹이 층진 공간을 형성하는 이 소용돌이는 음악이 울리는 동안 연주자와 관객을 하나로 끌어안는 상징물로 작용한다.

“인조섬유 막 구조물의 디자인은 컴퓨터를 통해 바흐 음악의 멜로디를 공간적으로 형상화한 것입니다. 음악이 다층적 공간을 통과하면서 증폭되고 시각적인 이미지와 연결되도록 한 것이지요. 이 구조물은 페스티벌이 끝난 뒤에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곳에 옮겨 설치할 수 있습니다. 어떤 형태의 공간이든 ‘유동(流動)하는 공간’으로 변형시킬 수 있습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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