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본성과 의지 사이, 인간 길을 잃다

  • 입력 2009년 7월 25일 02시 56분


선택의 기로에 선 인간의 마음은 항상 복잡하다. 이성을 따른 것인지, 본능에 충실할 것인지. 이런 딜레마로부터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 그림은 서양화가 황주리 씨의 1986년 작 ‘내가 살려면’. 그림 제공 생각의 나무
선택의 기로에 선 인간의 마음은 항상 복잡하다. 이성을 따른 것인지, 본능에 충실할 것인지. 이런 딜레마로부터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 그림은 서양화가 황주리 씨의 1986년 작 ‘내가 살려면’. 그림 제공 생각의 나무
◇인간 딜레마/이용범 지음/552쪽·2만 원·생각의 나무

선택 앞에 망설이는 사람들, 심리와 행동의 이면 엿보기

선택은 인간의 숙명이다. 인생의 매 순간이 선택의 연속이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사람들은 항상 갈등한다. 이 책은 이런 선택의 고민, 즉 딜레마 앞에 놓인 인간의 불안정한 내면을 분석함으로써 인간의 본성이 무엇인지 탐구한다.

소설가인 저자는 다양한 딜레마를 예시한다. 아침 출근길은 지옥이다. 교통체증을 피하기 위해 아침 일찍 자동차를 몰고 도로로 나가지만, 다른 사람들도 똑같은 생각으로 일찍 집을 나선다. 그래서 도로 사정은 평소와 다를 바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버스나 지하철을 탈걸 하고 후회한다. 이런 경우는 아주 사소한 일상의 딜레마다.

사회적인 문제와 얽힌 딜레마도 있다. 1964년 3월 13일 오전 3시 15분, 미국 뉴욕 퀸스 지구의 한 주차장. 한 여성이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밖으로 나섰다. 그때 한 남자가 그녀를 뒤따랐다. 두려움을 느낀 여성은 경찰 호출이 가능한 전화 부스로 달려갔다. 하지만 그녀는 남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렸다. 그녀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 주변 아파트에 사는 38명이 그 광경을 목격했다. 하지만 그녀의 목숨이 끊긴 지 30분 뒤에야 한 사람이 경찰에 신고했을 뿐이다.

미국의 학자들이 이 사건을 연구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같은 상황을 동시에 겪은 사람이 많을수록 신고자로서의 의무감은 점점 약해진다. 특히 함께 있는 사람이 방관자적인 태도를 취할 때, 의무감은 거의 사라진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방관자 효과’라고 부른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예비경찰 101대대는 33세에서 58세 사이의 기혼남성으로 이루어진 조직이었다. 이들은 대부분 평범한 노동자 출신으로 군대를 경험한 적도 없었다. 1942년 이들은 폴란드에 파견되어 일할 수 있는 유대인 남성을 골라내고 그렇지 않은 유대인을 살해하는 임무를 맡았다. 이 일에 투입되기 전 그들에게는 학살을 거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하지만 500여 명 중 12명만이 주어진 임무를 맡지 않았다. 선량해 보이는 이들이 이 잔혹한 임무를 거부하지 않은 것은 무슨 까닭일까.

저자는 가장 원초적인 짝짓기의 딜레마를 소개한다. 로버트 레드퍼드와 데미 무어가 주연한 영화 ‘은밀한 유혹’에는 돈 때문에 백만장자와 잠자리를 갖는 유부녀가 나온다. 1993년 이 영화가 개봉될 당시 영화 속 주인공과 같은 상황에서 억만장자로부터 잠자리 제안을 받는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설문조사가 있었다. 응답한 여성의 80%가 제안에 응하겠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이런 대답을 하면서도 실제로 외도를 하는 여성은 설문조사 결과보다 적다.

저자는 위의 사례를 분석해 본 결과 딜레마가 진화와 생존을 위한 이기적인 유전자와 인간 의지 사이의 끝없는 갈등에서 비롯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인간은 원래 유전자가 지시하는 본능에 충실하도록 설계돼 있지만 도덕적,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원초적 선택을 망설인다는 것이다. 그는 “유전자 결정론이 맞느냐, 환경 결정론이 맞느냐 하는 이분법적 사고는 무의미하다”며 “우리의 마음이나 정신이 수십만 년 동안 유전자의 진화를 거친 뇌신경 회로에서 생겨나는 것은 분명하지만, 인간의 의지로 깨뜨릴 수 없는 성(城)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 책에 이어 ‘시장 딜레마’ ‘신 딜레마’ 등 인류 문화 해설서 3부작을 낼 예정이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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