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곡 작품으로 제 첫 작품이었고 1970년 11월 국립극장(현 명동예술극장)에서 초연할 때 관객들의 줄이 길거리를 메웠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되돌아온 명동예술극장의 무대에 다시 제 작품이 오른다니 감명 깊습니다.”
최인훈 작가(73)가 1970년 발표한 첫 희곡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가 명동예술극장 개관공연 시리즈 1편으로 10∼26일 무대에 오른다. 온달 설화와 은혜 갚은 까치 설화를 접목한 이 작품은 1970년 초연 이후 73, 75년에도 같은 무대에 올랐으며 이번 공연으로 34년 만에 다시 돌아온 셈이다. 1986년 문예회관 대극장에서도 공연된 바 있다.
“세 작품 모두 제겐 특별한 작품입니다. 셰익스피어나 괴테가 희곡작가였음을 상기할 때 오랜 세월 읽힐 수 있는 희곡을 쓰고 싶었는데, 제 작품이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나도 생명력을 잃지 않는다는 걸 보여 줬으니 어찌 기쁘지 않겠습니까.”
‘어디서…’는 온달모(母) 역을 맡은 박정자 씨에게도 뜻 깊다. 그는 1970년 초연 때 이 역을 맡아 모두 세 차례 수상한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처음(제7회) 받았다. 그는 “온달모 역은 출연 분량이 적지만 라스트 신을 홀로 감당하기 때문에 내 연기 인생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 역”이라고 말했다. “누구한테도 주고 싶지 않아 지금까지 다섯 차례 공연 모두 온달모 역을 도맡았죠. 그만큼 꿈이자 생시이고, 생시이면서도 꿈같은 이 작품의 매력을 보여 주는 배역입니다.”
연출을 맡은 한태숙 씨는 악연을 가연(佳緣)으로 풀어낸 경우다. 그는 연출가 초년이던 30년 전 ‘둥둥 낙랑 둥’을 서울연극제에 출품하기 위해 연습을 마친 상태에서 최 작가에게 승낙을 받으러 갔다가 ‘딱지’를 맞았다.
“최 선생이 작품을 아직 준비 중인 다른 극단의 손을 들어주시는 것을 보고 어찌나 서럽던지 ‘당신 작품은 다시는 안 한다’고 마음먹었어요. 그런데 막상 명동예술극장에서 작품 제안이 들어오니까 ‘어디서…’가 맨 먼저 떠올랐어요. 이 작품과 명동극장의 인연을 생각할 때 너무도 어울리는 작품이기도 하지만 제 잠재의식 속에 풀지 못한 그 무언가를 해소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한 씨는 작가에게 차마 30년 전 일은 말하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연습 현장을 찾은 최 작가는 배우들과의 회식 자리에서 일어나 “(옛일에 대해) 미안합니다”라고 했다 한다. 한 씨는 “기억도 못할 줄 알았는데…”라며 그 마음 씀씀이에 감탄했고, 최 작가는 “마음 넓은 연출자를 만난 것도 복”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정말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지 모르는 게 인생이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