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무엇이 되어…’ 34년만에 다시 만난다

  • 입력 2009년 7월 3일 03시 00분


34년 만에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다시 만난 연극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의 삼총사. 왼쪽부터 온달모 역을 맡은 배우 박정자 씨(왼쪽), 극본가 최인훈 씨(가운데), 그리고 1970년 초연 때는 관객이었던 연출자 한태숙 씨. 전영한  기자
34년 만에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다시 만난 연극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의 삼총사. 왼쪽부터 온달모 역을 맡은 배우 박정자 씨(왼쪽), 극본가 최인훈 씨(가운데), 그리고 1970년 초연 때는 관객이었던 연출자 한태숙 씨. 전영한 기자
명동예술극장 개관기념 재공연

“희곡 작품으로 제 첫 작품이었고 1970년 11월 국립극장(현 명동예술극장)에서 초연할 때 관객들의 줄이 길거리를 메웠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되돌아온 명동예술극장의 무대에 다시 제 작품이 오른다니 감명 깊습니다.”

최인훈 작가(73)가 1970년 발표한 첫 희곡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가 명동예술극장 개관공연 시리즈 1편으로 10∼26일 무대에 오른다. 온달 설화와 은혜 갚은 까치 설화를 접목한 이 작품은 1970년 초연 이후 73, 75년에도 같은 무대에 올랐으며 이번 공연으로 34년 만에 다시 돌아온 셈이다. 1986년 문예회관 대극장에서도 공연된 바 있다.

2일 명동예술극장에 있는 레스토랑 ‘왈츠 앤 닥터만’에서 열린 이 작품의 기자간담회에서 최 작가는 깊은 감회에 젖었다. 그가 발표한 7편의 희곡 중 ‘어디서…’ ‘한스와 그레텔’ ‘둥둥 낙랑 둥’이 올해 연극 무대를 빛내고 있다.

“세 작품 모두 제겐 특별한 작품입니다. 셰익스피어나 괴테가 희곡작가였음을 상기할 때 오랜 세월 읽힐 수 있는 희곡을 쓰고 싶었는데, 제 작품이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나도 생명력을 잃지 않는다는 걸 보여 줬으니 어찌 기쁘지 않겠습니까.”

‘어디서…’는 온달모(母) 역을 맡은 박정자 씨에게도 뜻 깊다. 그는 1970년 초연 때 이 역을 맡아 모두 세 차례 수상한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처음(제7회) 받았다. 그는 “온달모 역은 출연 분량이 적지만 라스트 신을 홀로 감당하기 때문에 내 연기 인생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 역”이라고 말했다. “누구한테도 주고 싶지 않아 지금까지 다섯 차례 공연 모두 온달모 역을 도맡았죠. 그만큼 꿈이자 생시이고, 생시이면서도 꿈같은 이 작품의 매력을 보여 주는 배역입니다.”

연출을 맡은 한태숙 씨는 악연을 가연(佳緣)으로 풀어낸 경우다. 그는 연출가 초년이던 30년 전 ‘둥둥 낙랑 둥’을 서울연극제에 출품하기 위해 연습을 마친 상태에서 최 작가에게 승낙을 받으러 갔다가 ‘딱지’를 맞았다.

“최 선생이 작품을 아직 준비 중인 다른 극단의 손을 들어주시는 것을 보고 어찌나 서럽던지 ‘당신 작품은 다시는 안 한다’고 마음먹었어요. 그런데 막상 명동예술극장에서 작품 제안이 들어오니까 ‘어디서…’가 맨 먼저 떠올랐어요. 이 작품과 명동극장의 인연을 생각할 때 너무도 어울리는 작품이기도 하지만 제 잠재의식 속에 풀지 못한 그 무언가를 해소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한 씨는 작가에게 차마 30년 전 일은 말하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연습 현장을 찾은 최 작가는 배우들과의 회식 자리에서 일어나 “(옛일에 대해) 미안합니다”라고 했다 한다. 한 씨는 “기억도 못할 줄 알았는데…”라며 그 마음 씀씀이에 감탄했고, 최 작가는 “마음 넓은 연출자를 만난 것도 복”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정말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지 모르는 게 인생이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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