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기억의 심연서 꺼낸 욕망, 사랑… 연극 ‘하얀 앵두’

  • 입력 2009년 6월 26일 02시 58분


연극 ‘하얀 앵두’(배삼식 극본·김동현 연출)의 무대는 강원 영월 산골마을의 한 전원주택의정원이다. 정원이라지만 오래 묵은 개나리 나무 한 그루와 평상을 빼고는 꽃 한 송이 풀 한 포기 없는 황량한 흙더미다. 큰 수술을 받고 요양차 내려온 50대 작가 반야산(조영진)은 그 정원을 어린 시절 환상적인 하얀 앵두가 자라던 할아버지의 정원처럼 꾸미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아직 아무것도 심은 게 없다.

공연 내내 그 텅 빈 황무지를 가득 채우는 것은 장대한 시간과 그 시간에 맞서 자신의 존재가 소멸되는 것을 막으려는 인간들의 끊임없는 수다다. 이 시간은 그 정원이 5억 년 전 캄브리아기에 적도 부근 남태평양 얕은 바다에 잠겼음을 증언해 주는 작은 삼엽충에서 흘러나온다. 사람이 500만 번 살았다 죽기를 반복해야하는 시간이 농축된 그 화석을 응시할 때 사람들은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그 시간의 늪에 빠져들면서 깊은 침묵에 잠기거나 거기서 헤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써서 수다를 늘어놓는 것이다. 전자가 인생만사 무상함을 현기증 나도록 깨닫는 순간이라면 후자는 반대로 그렇기에 더욱 짧은 생에 더욱 애착심을 갖는 본능이 발현되는 순간이다.

연극의 주인공들은 집 앞에서 찾아낸 삼엽충, 옆집 어린 암캐와 짝짓기를 벌인 늙은 개, 각종 꽃나무에 대한 원예 상식,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하얀 앵두와 같은 가벼운 소재를 놓고 수다를 펼친다. 마치 세상만사 도통한 사람처럼 헛헛한 웃음을 터뜨리며 부담 없이 떠들어대는 이 이야기들은 후반부 그들의 숨겨둔 이야기와 결부되면서 미묘한 반전의 꽃을 피운다.

삼엽충을 놓고 인생무상을 떠들던 반야산의 후배이자 지질학자인 권오평(민복기)은 연구에 몰두하느라 아내가 암에 걸려 최후를 맞을 때까지 이를 몰랐다는 상처가 숨겨져 있다. 늙은 애견이 생의 마지막 순간 짝짓기에 성공한 것을 기뻐하던 반야산은 여고생 딸(최보광)이 학교 윤리 선생(백익남)의 아기를 갖게 된 사실에 경악한다. 반야산의 정원 가꾸기를 돕던 이웃집 곽 노인(박수영)은 간첩 누명을 쓰고 삶을 포기했던 자신에게 새 삶의 길을 열어준 송씨 마님(성여진)의 옛 정원을 복원하려는 깊은 뜻을 감추고 있었다. 그리고 반야산의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줄 알았던 하얀 앵두는 인터넷 동호회를 통해 쉽게 씨앗을 분양받을 수 있는 실재하는 나무임이 밝혀진다.

두산아트센터가 기획한 과학연극시리즈 4편의 마지막 작품인 이 작품은 유일한 창작연극이다. ‘열하일기만보’와 ‘벽 속의 요정’ 등을 통해 탄탄한 극작 솜씨를 선보인 배삼식 작가는 지질학과 고생물학, 원예학을 끌어들였지만 결국 영원한 시간 앞에 유한한 존재로서 인간의 이야기를 펼쳤다. 거기엔 분명 육체의 소멸은 못 막아도 기억의 소멸만은 막으려는 인간 군상에 대한 애틋한 시선이 담겨있다.

연극은 극중 인물들을 텅 빈 황무지 정원의 꽃과 나무로 대신하려는 ‘식물적 상상력’을 발휘한다. 하지만 그런 시도는 오히려 극중 인물들을 동물적 욕망이 거세된 온실 속 화초처럼 만들었다. 그들은 마치 향나무를 뜻하는 원백(圓柏)이란 이름으로 불리면서 극중 조명으로만 그 존재를 드러내는 반야산의 애견처럼 생동감과 입체감을 상실했다. 자신보다 열일곱 살이나 많은 학교 선생님과 관계를 맺어 임신했으면서도 무심한 듯한 표정으로 사과를 깨무는 반지연만 예외로 하고. 그런 맥락에서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을 더욱 꽃피우기 위해서라도 배삼식 작가가 조금은 ‘나쁜 남자’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7월 5일까지 서울 종로구 연지동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 02-708-5001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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