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로 보내는 희망편지]‘가위손’ 꿈꾸는 김태완 군

  • 입력 2009년 6월 23일 02시 58분


헤어디자이너를 꿈꾸는 김태완 군(17·왼쪽)과 헤어디자이너 박준 씨(57)가 20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박준뷰티랩 본점에서 만나 함께 가위를 들었다. “누군가의 헤어스타일을 창조하는 것이 정말 좋다”는 김 군의 말에 박 원장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김 군을 응원했다. 박영대 기자
헤어디자이너를 꿈꾸는 김태완 군(17·왼쪽)과 헤어디자이너 박준 씨(57)가 20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박준뷰티랩 본점에서 만나 함께 가위를 들었다. “누군가의 헤어스타일을 창조하는 것이 정말 좋다”는 김 군의 말에 박 원장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김 군을 응원했다. 박영대 기자
“다른 아이들은 미용학교 다니던데… 뒤처질까 겁나요”

저는 경남 김해에서 헤어디자이너를 꿈꾸며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김태완(17)입니다. 헤어디자이너를 목표로 삼은 건 얼마 되지 않아요. 오래전부터 머리 만지는 것을 좋아했지만 헤어디자이너라는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거든요.

사실 어릴 적부터 부모님은 많이 다투셨고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 결국 이혼을 하셨습니다. 함께 살던 어머니의 건강마저 나빠져 전 중학교 1학년 때 가정위탁제도를 통해 스승이자 ‘아버지’인 목사님을 만나게 되었지요.

목사님 가족을 처음 만났을 때엔 어색해 말도 잘 하지 않았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과 가족이라니…. 중학교 땐 이리저리 방황했어요. 친구가 좋고, 오토바이가 좋아 기분에 따라 행동했고 몇 차례 집도 나갔습니다.

그런데 고교생이 돼 미래에 대해 생각하니 중학교 시절을 헛되게 보낸 것이 엄청 후회가 됐습니다. ‘이러다간 아무런 준비나 꿈도 없이 스무 살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습니다. 항상 제 곁에서 손을 내밀어 주고 계신 목사님이 그제야 보이더군요.

한결같이 저를 보살펴 주시는 목사님과 가족 덕분에 저는 이제 헤어디자이너의 꿈을 굳혔습니다. 비록 학교는 그만뒀지만 검정고시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검정고시를 통과하면 전문대에 진학해 기술을 익히고, 연수와 수련을 통해 꿈에 도달해 나갈 계획이에요.

물론 쉽지 않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요. 하지만 이제 그것이 두려워서 도망치거나 하진 않을 것입니다. 불같은 열정으로 꿈을 향해 달려갈 거예요. 박준 선생님, 이런 마음이면 충분히 가능할까요?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35년전 남자 미용사는 ‘눈총’대상
오기로 버텼더니 지금은 팬도 생겨”
‘빨간머리’ 김군 만난 박준 원장
나도 22세때 가위 처음 잡아
손님들 싫어해 담배도 끊어
무슨 일이든 열정갖고 덤벼라

“너 왜 헤어디자이너가 되고 싶니?”

빨간색으로 머리를 염색한 김태완 군(17)이 20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박준뷰티랩 본점 원장실로 들어서자 박준 원장(57)이 던진 첫마디.

잠깐 당황한 듯 머뭇거리던 김 군이 “아, 그게… 머리에 관심이 많고 머리 만질 때가 정말 좋아서요”라고 대답하자 박 원장이 웃음을 터뜨렸다.

“하긴, 좋아한다는 게 가장 중요하지.”

세계 미용대회 3위 입상, 한국 최다 미용실 프랜차이즈 운영 등 화려한 이력에 빛나는 박 원장이지만 그의 삶도 초반엔 고난의 연속이었다. 초등학교 졸업이라는 학력, 남자 미용사를 바라보는 곱지 않은 시선과 맞서 싸워야 했다.

“1970년대 종로 거리의 YMCA미용실에서 우연히 미용을 시작했어. ‘남자가 부끄럽게 저게 무슨 일이냐’며 뒤에서 말들이 많았지. 대놓고 남자미용사는 싫다는 손님도 있었어. 하지만 그럴 때마다 더 독하게 마음을 가다듬었지. 태완이 너도 오기를 가져야 돼.”

이제 방황을 끝내고 헤어디자이너의 꿈을 찾은 김 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미용고등학교에 벌써 진학해서 기술을 배우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늦은 게 아닌가 걱정이 된다”고 털어놓았다. 그러자 박 원장은 따끔하게 일침을 놓았다.

“늦긴 뭐가 늦어. 나도 미용기술 배우기 시작한 게 스물두 살이야. 우리 학원(박준뷰티아카데미)에 20대 중반을 훌쩍 넘겨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은데 뭘.”

용기를 얻은 김 군이 마음속 궁금증을 풀어놓는다. “정말 많은 미용사가 있는데 그중에서 손님들을 사로잡고 성장하려면 뭐가 필요한 거죠?”

박 원장은 기본을 지키려는 마음, 꿈을 잊지 않고 노력하는 의지를 강조했다. 늘 고객을 생각해야 한다는 점도 빼놓지 않았다. 그러곤 “내가 담배 피우는 것을 손님들이 싫어하기에 그 자리에서 담배를 끊어 버렸다”고 말했다.

박 원장은 헤어디자이너란 직업의 매력을 풀어놓으며 김 군의 의욕을 북돋아주었다.

“내가 아프다고 하면 ‘박준 원장이 아프면 내 머리 앞으로 큰일 나는데’ 하면서 마음 졸이는 팬들이 있어. 미용사는 행복을 전해줄 수 있는 직업이야.”

경남 김해에서 이른 아침에 출발해 먼 길을 왔지만 박 원장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놓치지 않고 이것저것을 질문하던 김 군. 빨리 흘러가버린 시간을 아쉬워하는 김 군에게 박 원장은 책 두 권을 건넸다. 눈썰미를 키우라는 의미에서 한 권은 헤어잡지, 꿈을 열심히 키워나가라는 의미에서 나머지 한 권은 1세대 헤어디자이너 그레이스 리 씨의 인생이 담긴 ‘오늘이 내 삶의 클라이맥스다’.

“태완아, 너 오늘 집에 가서 뭐라고 적을 거니?”

“네?”

“오늘 당장 가서 적어야 돼. ‘최고의 헤어디자이너가 되겠다’고. 알겠지? 고민되면 전화하고.”

김 군의 어깨를 두드려주는 박 원장. 박 원장을 바라보며 김 군은 40년 뒤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는 듯했다.

“김태완 원장님 안 계시면 제 머리 큰일 나니까 아프시면 안 돼요.”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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