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벽엔 전통을, 내부엔 기능을… 재개관한 명동예술극장

  • 입력 2009년 6월 10일 02시 51분


《5일 34년 만에 다시 문을 연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은 1937년 800여 석 규모의 공연장 ‘명치좌(明治座)’로 개관했던 건물이다. 광복 이후 서울시 공관으로 쓰이다가 1959년 다시 국립극장으로 용도가 바뀌면서 오랜 세월 한국 연극인들의 ‘꿈의 무대’로 불렸다.

하지만 1973년 국립극장이 장충동으로 이전하고 1975년 대한투자금융에 건물이 팔리면서 내부 공간만 사무용으로 개조됐다. 》

재개관 설계를 맡은 한종률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 전무는 “작업을 맡은 뒤 2004년 겨울 처음 찾아간 곳에는 거리의 소음에 치여 옛 모습을 잃어버린 유적이 덩그러니 서있었다”고 말했다.

“조잡하고 비효율적인 인테리어로 채워진 오피스 건물이었죠. 부드러운 베이지색이었을 외벽 타일에는 회색 페인트가 무성의하게 덧발라져 있었어요. 극장 내부 구조 가운데 온전히 보존된 부분은 전혀 없었습니다.”

한 전무는 외벽의 틀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내부 공간을 통째로 새롭게 계획했다. 왁자한 주변 환경과 은근한 거리를 두면서 고립되지는 않도록 만드는 것이 먼저 해결해야 할 관건이었다. 관객의 주 진입로를 2층으로 끌어올리고 1층 로비 공간을 넓힌 것은 이 때문이다. 1층의 로비와 라운지는 매표소를 이용하는 방문객 외에도 건물 앞을 지나는 행인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 됐다. 1286m²에 불과한 건축면적에 비해 진입 공간의 느낌은 크게 답답하지 않다.

건물 중심부의 공연장을 둘러싼 2층과 3층 홀도 혼잡한 거리와 건물 속 퍼포먼스를 자연스럽게 분리해 주는 완충 기능을 한다. 외부 벽의 콘크리트와 벽돌을 느끼면서 건물 안에 들어온 관객은 이곳에서 나무와 유리로 마감한 또 하나의 표피를 만난다.

직육면체 박스 같은 외벽만 남기고 그 내부에 바닥이 둥근 유선형 토기(土器) 모양의 공연장을 끼워 넣었다고 보면 된다. 토기와 박스 사이에 생긴 공간이 2층과 3층의 홀이다. 토기는 땅에 닿지 않아 1층 로비가 널찍해지도록 만들었다. 박스 위로 토기가 삐져나온 듯한 모양새가 된 옥상 부분에는 야외 카페를 만들었다. 군데군데 남아있는 미세한 균열이 세월의 흔적을 실감하게 만드는 외벽의 기억을 잊고 ‘오늘의 공연’을 다시 생각할 수 있는 현대적 이미지의 휴식 공간이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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