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입은 보건소, 주민과 ‘소통’하다

  • 입력 2009년 6월 10일 02시 51분


보건소 설계로 김수근문화상 받은 ‘경영위치’ 건축사무소

보건소 건물에 좋은 공간을 담을 수 있을까. 상상하기 쉬운 모습은 아니다. 예방주사를 맞거나 구충제를 받으러 찾아갔던 동네 보건소의 기억은 대개 창백한 무채색의 콘크리트 이미지로 남아 있다.

최근 제20회 김수근문화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강원 ‘정선군 보건소’는 그런 고정관념을 뛰어넘은 작품이다. 이 건물을 설계한 건축사사무소 ‘경영위치(經營位置)’의 김승회 대표(46·서울대 건축학과 교수)와 강원필 소장(45)은 14년간 30곳이 넘는 지역 보건소와 의료시설에 색다른 ‘건축의 옷’을 입혀 왔다.

8일 오후 서울 서초구 경영위치 사무실에서 만난 김 대표는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무뚝뚝한 공공시설’의 관습적 모습에서 벗어나 지역 주민이 다양한 목적으로 이용하는 문화적 구심점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원주 보건소에서 근무하신 모친을 따라다니던 어린 시절 기억이 아직 남아있어요. 그 덕에 1995년 보건복지부에서 지역보건의료기관 표준설계안을 공모했을 때 더 의욕적으로 작업할 수 있었습니다. 익숙하게 경험하면서 은근한 애착을 쌓아온 공간이니까요.”

김 대표는 1989년 미국 미시간대 대학원을 졸업한 뒤 시카고의 건축사무소 SOM에서 일했다. 하지만 오피스빌딩 등 대규모 프로젝트의 일부를 제한적으로 맡는 작업에 곧 싫증을 느꼈다. 귀국한 뒤 규모는 작더라도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하나의 공간을 책임지고 완결하고 싶은 마음에 대학 후배 강 소장과 회사를 차렸다. 때마침 열린 보건소 공모는 그들이 찾던 오브제의 성격과 맞아떨어졌다.

경영위치의 계획안은 국내 보건소 설계의 가이드라인을 위한 5개 행정단위별 공모에 모두 당선됐다. 그러자 전국 지방자치단체에서 실제 설계까지 맡아서 해 달라는 요청이 줄을 이었다. 전국적인 ‘보건소 짓기 여정’은 그렇게 시작됐다.

아플 때만 찾는 침울한 공간이 아니라 건강한 사람도 한가로울 때 가벼운 마음으로 들르는 곳이 될 수 있도록 각 지역에 적합한 공공 편의시설 프로그램을 추가했다. 스포츠센터나 도서관, 강당은 기본. 충남 아산시 보건소 안에는 온천수를 끌어들인 노약자 전용 목욕탕도 있다. 울타리를 없애고 행인을 위한 널찍한 오픈 스페이스를 마련한 것도 특징이다.

“처음에는 ‘왜 담장을 없애느냐. 일하기 불편하다’는 불만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다 지어진 건물을 경험한 이들의 평가가 나오고부터 상황이 바뀌더군요. 이제는 ‘따뜻한 느낌의 목재를 많이 써 달라. 보이드(void·위아래를 틔운 공간)를 만들어 달라’는 등 구체적 요청이 들어옵니다. 공간이 사람들을 말없이 설득해준 것이죠.”

내부뿐 아니라 외형에서도 차갑고 딱딱한 공공시설의 느낌은 찾아볼 수 없다. 건물이 뿌리 내린 지역의 특성을 외관에 반영해 저마다 독특한 랜드마크가 되도록 했기 때문이다.

경북 문경시 보건소 용지는 원래 인근 시장의 공영 주차장이었다. 김 대표와 강 소장은 ‘지하를 파내서 주차장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한 시 측과 의논해 땅을 파지 않고 기둥을 박아 주차장 위에 떠 있는 듯한 건물을 만들었다. 주민들은 낯익은 시설을 잃지 않으면서 짬짬이 기대어 쉴 만한 넉넉한 그늘을 덤으로 얻었다. 쉼터가 된 보건소 앞은 이제 바자회와 마을 잔치가 번갈아 열리는 모임의 공간이다.

경기 화성시 보건소에는 혼란스러운 주변 환경으로부터 잠시 벗어날 수 있도록 한옥 안채를 닮은 고즈넉한 공간을 만들었다.

지역을 상징하는 특유의 재료를 외피에 드러내기도 했다. 경북 포항시 남구 보건소는 포스코에서 제작한 철골로 구조를 만든 뒤 외피를 철판으로 감쌌다. 정선군 보건소는 특산물인 ‘정선석’을 표면에 둘렀다. 정선석은 한국에서 생산되는 유일한 토종 대리석이지만 무늬가 복잡해 잘못 시공하면 지저분한 느낌을 준다. 김 대표와 강 소장은 돌 붙임 간격을 불규칙하게 나누면서 표면을 거칠게 처리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한 사람이나 한 건물만을 위한 작업은 좋은 건축이 되기 어렵습니다. 함께 어우러져 살기 위한 배려가 곳곳에 스며 있어야 좋은 공간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보건소 하나로 도시 전체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는 일은 불가능한 욕심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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