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부동산 회복 조짐? 문화소비는 여전히 바닥!

  • 입력 2009년 6월 4일 02시 59분


《글로벌 금융위기가 본격화한 지난해 9월 이후 패닉 상태에 빠졌던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이 안정세를 찾고 있다.

지난해 10월 24일 938.75까지 떨어졌던 코스피는 1,400 선을 회복해 3일에는 1,414.89로 마감했다. 하락폭이 컸던 서울 강남 지역의 부동산 가격도 최근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가격의 90% 이상 회복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에 훈풍이 불면서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지만 “풍부한 유동성 공급에 따른 장세일 뿐 실물 경기의 회복은 멀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출판, 공연 등 문화계가 체감하는 경기도 아직은 싸늘하다.

출판계, 공연계 관계자들은 “불황 때 나타나는 지표와 속설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으며 (문화계) 경기 반등의 지표는 아직 나타나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책 구입, 공연 관람 등에 쓰는 문화소비는 가계소비 중 불경기 때 가장 먼저 줄이는 비용. 따라서 문화소비의 회복 여부로 경기를 판단해 보면 현재 실물경기는 아직 ‘바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 불황 때 문학이 강세라는 속설은 여전

2000년대 들어 계속 성장하다 지난해 경기 하락의 직격탄을 맞은 자기계발서는 올 들어서도 계속 주춤한 상태다. 교보문고가 집계한 5월 마지막 주 베스트셀러를 보면 20위권에 든 자기계발서는 ‘공부하는 독종이 살아남는다’ ‘스물일곱 이건희처럼’ 등 2권에 불과하다. 인터파크도서의 집계에 따르면 5월 자기계발서 판매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0% 줄었다.

경제경영서의 약세도 마찬가지. 김미영 인터파크도서 과장은 “경제경영서 시장은 경제 상황에 민감하게 영향받는 분야인데 경제위기를 분석하는 책만 조금 판매가 늘었을 뿐 전체적으로 지난해보다 30%가량 판매가 줄었다”고 설명했다.

출판 시장의 화두는 여전히 문학이다. ‘불황 때는 문학이 강세’라는 속설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교보문고의 5월 마지막 주 베스트셀러 집계에서 소설, 시, 에세이 등 문학 작품이 상위 20위권 가운데 절반 이상인 12권 포함됐다.

특히 80만 부 넘게 팔린 뒤에도 기세가 꺾이지 않는 ‘엄마를 부탁해’의 강세는 ‘문학’과 ‘가족서사’라는 불황의 코드를 계속 반영하고 있다. 김정혜 창비 부장은 “불황과 맞물려 가족서사가 떴고, 경기 침체에 정서적 위안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이 책을 선택했는데 아직도 그런 경향이 계속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호경기의 특징으로 해석되는 ‘장르소설의 강세’는 아직 두드러지지 않고 있다. 김 부장은 “장르소설은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 구매하는 경향이 있는데 아직 여유가 없어선지 장르소설보다는 순수소설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출판 시장에서 ‘쏠림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 것도 경기가 호전되지 않았다는 근거로 보인다. 쏠림 현상이란 특정 소재의 책이 뜨면 비슷한 콘셉트의 책들이 덩달아 나오는 경향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미현 민음사 부장은 “아직은 비용 절감이 더욱 절실한 출판사들이 시류를 무작정 따르기보다는 출판 종수를 가급적 줄이려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보증된 작품만 올리는 뮤지컬

신시컴퍼니는 5일 성남아트센터에서 뮤지컬 ‘시카고’를 무대에 올리고, 21일부터는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맘마미아’를 시작한다. 두 작품 모두 흥행이 보장될 것으로 보이는 작품이다. 최승희 팀장은 “불황인 요즘 무리하게 신작을 개발하기보다 베스트셀러를 무대에 올리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대형 뮤지컬을 기획했던 뮤지컬 회사들은 규모가 작은 뮤지컬이나 연극 쪽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드림걸즈’를 올해 초 공연했던 오디뮤지컬컴퍼니는 연극 ‘오월엔 결혼할 거야’를 뮤지컬화한 ‘웨딩펀드’를 7월 서울 대학로 문화공간 이다에서 공연한다. 비용도 적게 드는 데다 연극으로서 흥행했다는 보증까지 가미된 작품이다. 뮤지컬 ‘기발한 자살여행’을 무대에 올렸던 쇼팩은 영화를 원작으로 한 연극 ‘레인맨’을 소극장에서 공연하고 있다.

이처럼 연극, 뮤지컬 쪽에선 경기 호전을 가늠하는 지표인 ‘신작 개발’ ‘대형 작품 공연’ 등의 흐름이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불황을 가리키는 지표는 뚜렷하다. 두산아트센터에서 상연 중인 정통연극 ‘코펜하겐’은 연일 매진으로 대박 행진을 이어가면서 “불황 때는 정통연극이 잘된다”는 속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 내년을 기약하는 클래식 공연

클래식 공연계는 올해는 아예 포기하고 내년을 기약하고 있다. 호전 조짐을 보이기는커녕 공연팀의 재정난, 기업 후원 취소 등으로 오히려 상황이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10월 한국을 찾기로 한 신시내티 심포니는 재정난을 들어 한국 공연을 접었다. 5월 말 내한하기로 했던 미국 피츠버그 심포니의 공연은 국내 주최 측에서 손을 떼는 바람에 취소됐으며 12월에 열릴 예정이던 빈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공연도 무산됐다. 6월 말 내한공연을 하는 러시안 내셔널 오케스트라는 당초 세 차례 공연을 기획했으나 협찬을 받지 못해 2회 공연으로 줄었다.

클래식 공연계는 내년 초쯤 경기가 회복될 것으로 보고 영국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버밍엄시티 오케스트라, 프랑크푸르트 방송교향악단 등의 초청을 추진 중이다. 공연기획사 마스트미디어 관계자는 “해외 오케스트라 공연의 경우 기업 협찬이 필수인데 올해는 전무하다시피 했다”면서 “내년 공연의 협찬 여부를 기업들에 타진 중인데 올해보다는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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