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 손때 묻은 추억을 넘기다

  • 입력 2009년 6월 1일 02시 54분


동숭동 마로니에 공원 ‘헌책 축제’ 폐막
“대학로 책 문화행사 더 다양했으면”

‘도스또옙스키전집’(1970·정음사), ‘동끼호떼’(1955·삼성출판사)…. 40년도 더 된 낡은 책을 펼치자 오래된 종이 냄새가 코끝을 간질인다. 지난달 29일부터 사흘간 서울 종로구 동숭동 마로니에 공원에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하고 문학의집·서울 주관으로 2009 헌책 축제 ‘헌책에게 길을 묻다’가 열렸다. 헌책 축제가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31일 찾은 이곳에서 시대별로 인기를 끌었던 문고판 전집부터 최근의 아동·실용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책들을 만날 수 있었다. 사회·인문과학 전문 헌책방인 마포구 노고산동의 ‘숨어 있는 책’, 인천의 헌책방 거리인 배다리거리의 대표 서점 ‘아벨서점’, 30여 년 동안 문학 예술인들의 단골 가게였던 은평구 연신내의 ‘문화당서점’ 등 유서 있는 헌책방이 모였다. 주부 이정순 씨(36·광진구 구이동)는 “우연히 들렀는데 저렴하게 나온 좋은 책이 많다”며 “헌책방을 가고 싶어도 정보가 없어서 들르지 못했는데 한곳에서 다양한 서점을 둘러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직접 자신의 헌책을 들고 나와 판매하는 어린이들도 있었다. 민태희 군(13·선덕중)은 학습만화, 동화책 등을 모두 일괄적으로 1000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민 군은 “10권 정도 팔았는데 내가 봤던 책을 누군가 되사간다는 게 재밌다. 번 돈으로 다른 책을 사볼 것”이라고 말했다.

아동문학가 노경실 씨의 책 기증 행사와 마임퍼포먼스 등으로 공원을 찾는 사람이 늘어나자 부스를 지키는 서점 대표들도 분주해졌다.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윤성근 대표는 “특색 있는 헌책방이 많지만 마땅한 홍보 수단이 없어서 아는 사람만 아는 소수 문화로 남아 있었다”며 “각 헌책방의 색깔과 책 문화를 일반인에게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대학로의 헌책방 ‘이음책방’ 한상준 대표도 “책값 부담이 적다는 점 외에도 헌책은 세로쓰기, 활판인쇄 등을 통해 지난 문화를 고스란히 보여준다”며 “대학로에 전무했던 책문화 행사가 이번 계기를 통해 정기적으로 열렸으면 한다”고 말했다.

지역의 서점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처음이지만 참여 서점이 여섯 곳에 불과하고 홍보나 눈길을 끌 만한 프로그램이 부족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연출을 맡은 시인 김근 씨는 “디자인과 이슈 중심의 베스트셀러가 출판계를 주도하는 상황에서 헌책문화가 책이 가진 좀 더 본질적인 가치를 되살리는 데 기여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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