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고에 갇혀있는 ‘조선의 기록정신’

  • 입력 2009년 5월 27일 02시 49분


“세계기록유산 등재 ‘의궤’ 한글번역 겨우 3.3%… 현황 파악도 제대로 안돼”

200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조 의궤. ‘조선 기록문화의 꽃’이라 불리는 의궤를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 전체의 3.3%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의궤를 하루빨리 번역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실제 수치로 조사된 것은 처음이다.

○ 박소동 교수, 29일 학술대회 논문 발표

박소동 한국고전번역원(원장 박석무) 부설 고전번역교육원 교수는 26일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등에 소장된 의궤를 파악해 분석한 결과 의궤는 전체 606종이었으며 이 중 한국어로 번역된 의궤는 20종에 불과했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이 같은 내용이 담긴 논문을 한국고전번역원이 29일 오후 1시 반 성균관대 600주년 기념관에서 여는 ‘조선왕조의궤 번역의 현황과 과제’ 학술대회에서 발표한다. 박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의궤는 진연(進宴·나라 경사 때 궁중에서 베풀던 잔치), 가례(嘉禮·왕실 혼례 등의 예식), 종묘(宗廟·역대 임금과 왕비의 위패를 모시던 왕실의 사당), 영건(營建·궁궐 등의 건축) 등 70여 분야로 분류가 가능하지만 이 중 1종의 의궤라도 번역된 분야는 11분야에 그쳤다.▶표 참조

가례 분야는 22종 중 영조 때의 가례도감의궤 1종(4.5%), 영건은 22종 중 순조 때의 경희궁 재건축 과정을 기록한 서궐영건도감의궤 1종(4.5%), 종묘는 25종 중 숙종 때의 종묘의궤 1종(4%)만 번역됐다. 박 교수는 “모든 분야의 모든 의궤를 다 번역하는 것은 불가능하더라도 분야별, 시대별로 흐름과 변화를 알 수 있는 대표성 있는 의궤가 다 번역돼야 왕실 의례의 역사적 변천 과정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번역 여부와 상관없이 영인본(원본을 사진 등으로 복제한 것)으로 제작해 공개된 의궤도 55종(9.1%)에 불과해 의궤 원본에 대한 접근성도 떨어지는 것으로 박 교수는 분석했다.

○ 원본 영인본 제작도 9% 그쳐

번역본에도 오류가 적지 않게 드러났다고 박 교수는 지적했다. 정조가 경기 화성에 성을 쌓고 새로운 도시를 건설한 일을 정리한 화성성역의궤의 경우 ‘큰 사슬 고리 두 짝을 갖춰’를 ‘대사슬원환양배구(大沙瑟圓環兩排具)’로 표기했으나 번역본은 ‘큰사슬원환양배 갖춤’으로 표현해 ‘두 짝’이라는 뜻으로 쓰인 ‘양배’를 물품명처럼 잘못 썼다.

박 교수는 “국가 기록물에 해당하는 의궤를 종합적인 계획 없이 산발적으로 번역한 탓에 한국고전번역원의 전신인 민족문화추진회가 1997년 번역한 가례도감의궤가 1999년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다시 간행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 ‘의궤총서’로 간행 체계적 연구 필요

의궤의 전체 종수도 명쾌하게 정리되지 못한 실정이다. 박 교수는 의궤 종수를 606종으로 파악했지만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현황에는 833종이 올라 있다. 신병주 건국대 교수(한국사)는 “같은 종의 여러 의궤를 하나로 계산하느냐 책 수대로 세느냐에 따라 종수가 달라지고 규장각과 장서각에도 엄밀히 보면 한 종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중복 소장된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문화재위원인 신승운 성균관대 교수(서지학)는 “주제와 시대별 분류 체계를 갖춰 ‘한국의궤총서’로 간행해 세계기록유산에 걸맞은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의궤:

조선시대 왕실의 제사, 혼례, 잔치, 사신 접대, 장례 등 의식의 절차와 내용, 필요 물품 목록과 제작 과정을 그림과 함께 기록한 책. 조선시대에는 사고(史庫)에 보관됐으며 현재는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국립문화재연구소, 국립중앙도서관. 프랑스 파리국립도서관, 일본 궁내청 등에 소장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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