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신작 ‘엄마를 부탁해’로 인기 몰이 신경숙 작가

  • 입력 2009년 5월 9일 02시 56분


“장편소설 쓸땐 몇년이고 완전 몰입
주인공과 먹고 자고 대화까지 나눠”

‘통념 뒤집는 실험’ 뻔한 소재도 신선하게 만들어

《동아비즈니스리뷰(DBR)는 예술계 거장들을 만나 창의력의 원천과 자기계발의 비밀을 탐구하는 ‘Fountain of Inspiration’ 코너를 연재합니다. 인터뷰 전문은 DBR 33호(5월 15일자)에 실립니다. 편집자》

그녀는 자신의 나이를 잊고 사는 듯하다. 첫인사를 나누자마자 그녀가 대뜸 기자의 나이를 묻는다. 1983년생이라고 하자 “나랑 열 살 차구나”라고 답한다. 그녀는 1963년생이다. 스무 살 차라고 고쳐줬더니 그제야 “야, 나 참 나이 많이 먹었구나!”하며 놀란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왜 그녀가 나이를 잊고 사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소설가인 그녀는 ‘40대 여성’으로 붙박여 살길 거부한다. 소설을 쓸 때 스스로 주인공이나 주인공의 친구가 된다. 청초한 20대 여성이 됐다가 양복 입은 50대 아저씨로도 바뀐다.

지난달 20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의 한 카페에서 소설가 신경숙 씨를 만났다. 그녀는 최근 ‘엄마’ 열풍을 일으킨 주인공이다. 지난해 11월 출간한 장편소설 ‘엄마를 부탁해’는 약 6개월 만에 70만 부나 팔렸다. 인터넷 독자 리뷰 코너에는 이 소설을 읽고 쓴 참회의 글들이 넘쳐난다. 서울역에서 실종된 엄마의 흔적을 자식들과 남편, 엄마 본인의 시선으로 추적한 스토리가 대중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문학계에서 지극히 진부한 소재인 ‘엄마’라는 재료로 어떻게 이런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을까.

○ 가장 새로운 것은 가장 나답게 쓰는 것

신 작가는 ‘엄마를 부탁해’에서 창조적인 실험을 했다. 각 장을 큰딸, 큰아들, 남편, 엄마 본인의 시점으로 서술하면서 호칭은 ‘너’ ‘그’ ‘당신’ ‘나’ 등으로 썼다. 이를테면 ‘엄마가 글을 읽을 줄 모른다는 것을 너는 언제 알았을까’(21쪽)라는 문장은 독자를 직접 겨냥하는 말 같아 두렵기까지 하다.

“여기 빈 책상 위에 표지도 없고 제목이나 저자 이름도 없는 책이 떨어져 있는데, 누가 지나가다 그 책을 주웠다고 해보세요. 몇 쪽 읽어보고는 ‘아, 이건 신경숙 소설인데!’라고 알아볼 수 있는 소설을 쓰고 싶었어요. 그게 새로움이라고 생각해요. 인류 역사가 이렇게 오래 진화해왔는데 이 세상에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가 과연 있을까요? 오히려 가장 새로운 것은 가장 나답게 쓰는 거예요. 이 세상에 나는 나 혼자뿐이거든요.”

진부한 캐릭터도 그녀의 소설 속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난다. 보통 명성황후는 강인한 여성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그녀의 장편소설 ‘리진’에서 묘사된 명성황후는 외롭고 연약하다. 단편소설 ‘풍금이 있던 자리’의 주인공인, 유부남과 사랑에 빠진 여성은 다른 소설이나 드라마에선 볼 수 없었던 너무나 착한 캐릭터다. 유부남의 딸까지도 사랑하는 천사다. 뻔한 소재를 완전히 낯설게 하는 그녀만의 차별화 노하우는 뭘까. 통념을 뒤집어보는 실험적 사고가 그 원천이다.

“우리가 선하고 모범적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뒤집어 생각해봐요. ‘풍금이 있던 자리’에서는 누구에게나 지탄의 대상이 될 만한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그 사람이 지닌 고유한 아름다움에 초점을 맞춰봤어요. 대신 균형을 잃진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 사람을 빛나게 하려고 통념을 허물어뜨리진 않았어요.”

○ 주인공과 ‘동거’하며 완벽하게 몰입

그녀는 한 작품을 마치고 나서 새 작품을 시작할 때까지가 가장 두렵다고 고백했다. 백지 상태에서 뭔가를 창조해내는 일은 언제나 두렵다.

“뭔가 느끼고 받아들일 때 자기만의 기준을 너무 뚜렷이 세우는 것은 좋지 않아요. 마음속에 어떤 이념이 확고히 서 있으면 많은 것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거든요. 나와 완전히 반대에 있는 세계도 받아들일 만큼 열린 마음을 가져야 넓은 세계로 나아갈 수 있죠.”

그녀는 1년이건 6년이건 장편소설 한 권을 쓰는 동안 작업에 완전히 몰입한다. 몰입의 원천은 ‘행복’이다. 그녀는 “슬픔에 대해서든, 고통에 대해서든 어떤 소설을 쓰더라도 쓰는 순간이 너무 좋다”고 말한다. 글을 쓸 때 그녀의 몸은 만신창이가 된다. 허리에 통증이 오고, 목이 아파 고통스러워도 정신만은 가장 충만하단다.


▲동아닷컴 박태근 기자

“소설을 쓸 때 주인공들이 책 속의 인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현실 속의 인물이라고 여기죠.” 소설을 쓰는 동안에는 밥 먹을 때도 주인공과 함께 먹는다고 생각하고, 잠잘 때도 옆방에서 주인공이 자고 있다고 생각한다. ‘엄마를 부탁해’를 쓸 때는 장을 보면서 ‘이 엄마는 장에 오면 뭘 살까, 살 때 뭐라고 말하면서 살까’하는 생각들을 했다. 가끔 이른 아침 산에 오를 때면 주인공과 함께 산행한다고 착각하고 중얼중얼 대화를 나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녀를 이상한 사람인 양 쳐다본다.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라 저절로 그렇게 돼요. 자연히 제 모든 일상이 그 작품을 마칠 때까지 작품 속에 몰입돼요.”

○ 사람은 누구나 영감 덩어리

그녀도 글을 쓰고 싶은 마음으로부터 멀어질 때가 간혹 있지만 그리 나쁘진 않다고 한다. 새로운 것을 충전할 필요가 있다는 자율적 신호라고 받아들인다.

“그럴 땐 그냥 안 썼어요. 어떻게 글을 항상 써요? 대신 다른 걸 하죠. 여행 가고, 배우고 싶은 게 있으면 배워보기도 하고, 친구들 만나고, 재봉질도 하고…. 슬럼프에 빠질 때는 나를 자유롭게 두면서 이것저것 다른 공기를 마시며 ‘환기’를 하죠.”

작품을 쓰다 좀처럼 펜이 안 나갈 때는 사람들을 만난다. 여행지에서 글이 잘 안 풀리면 그 마을의 어느 식당에 가서 동네 사람들끼리 하는 이야기를 가만히 듣는다. 거기서 길이 생기기도 한다. “역시 사람 이야기를 쓰다 막히면 사람이 뚫어주는 것 같아요. 땅에서 넘어지면 땅을 짚고 일어나야 한다잖아요. 사람은 정말 영감 덩어리예요. 누구나….”

그녀는 더 잘 쓰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한다. “사람들이 내 소설을 읽고 자신을 한번 거울 보듯 깊이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어요. 그래서 힘들어도 계속 글을 쓰게 되나 봐요.”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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