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육 여사 사후 음악행사때 외로움 묻어나는 눈물 종종 보이기도”

  • 입력 2009년 4월 10일 02시 55분


차인태 씨, 에세이서 비화 공개

“난 ‘인간 박정희’가 상당히 외로운 사람이고 혼자 고민을 많이 하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감정표현이 전혀 없는 무장(武將)의 얼굴 밑에 여린 가슴이 있었다.”

장학퀴즈 진행자로 유명했던 전직 아나운서 차인태 경기대 다중매체영상학부 교수(65·사진)가 자전 에세이 ‘흔적’(FKI미디어)에서 털어놓은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얘기다. 차 교수는 “30여 년간 방송을 하면서 이승만 전 대통령을 제외하고 역대 대통령과 대통령 부인을 모두 만났다는 특이한 기록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1974년 육영수 여사의 장례식 방송을 진행한 이틀 뒤 박 전 대통령에게서 “차인태 씨, 방송 잘 봤습니다”라는 전화를 받았다. 그 한 통의 전화에서 ‘인간 박정희’의 다른 면을 봤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은 육 여사 사후(死後) 청와대에서 성악가나 국악인의 음악을 들으면서 종종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차 교수는 “뒤에 앉았던 사람들은 어두워 못 봤겠지만 무대에서 사회를 보던 나는 조용히 눈물을 훔치는 그의 모습을 또렷이 볼 수 있었다. 그것은 외로움이 묻어나는 눈물이었다”고 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부인인 이순자 여사는 말하는 것을 즐겼는데 한 오찬 모임에서 남편의 옷 취향에 대해 장황하게 얘기하자 전 전 대통령이 냅다 “빨리 밥 묵어”라고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차 교수는 “영락없는 평범한 한국 부부의 모습이었다. ‘이들도 사람이구나’ 하는 느낌이 확 들었다”고 했다.

아나운서의 눈으로 본 김영삼(YS) 전 대통령과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가장 큰 차이는 화법이었다. YS는 결론부터 말하고 아랫사람에게도 ‘형’ ‘동지’라는 친근한 표현을 쓰지만 DJ는 ‘기승전결’의 논리적 대화를 했고 호칭도 ‘○○ 씨’였다. 차 교수는 “1992년 대선을 앞두고 YS캠프에서 ‘YS의 발음교정 과외’ 요청이 들어왔다. (그러나) YS의 대중연설용 어벽(語癖)이 진한 경상도 사투리와 겹쳐 있어 과외수업은 좀처럼 진도를 나갈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1980년대 초반엔 고 김수환 추기경에게도 2박 3일간 ‘발음교정수업’을 했던 추억이 있다고 했다.

차 교수는 책 말미에 “‘왜 정치 안 하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데 국회의원이 아나운서가 됐다면 특별히 대접하고 축하할 일이지만, 아나운서가 국회의원이 되는 것이 정말 축하할 일인가”라고 반문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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