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처음엔 하품… 점점 환호… 끝내 눈물

  • 입력 2009년 4월 3일 03시 02분


어린이 뮤지컬 ‘스노우맨’

공연 앞부분을 보면서 내심 긴장했다. 변신로봇 ‘트랜스포머’와 일본 캐릭터극 ‘파워레인저’에 길들여진 우리 아이가 과연 이 공연을 좋아할까. 직업상 공연을 보러 다니느라 매 주말 아이와 놀아주지 못하는 죄책감을 덜어내려 일곱살 아들을 대동하고 나서긴 했지만 자신이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15분가량 공연을 보던 아들이 팔짱을 끼며 한마디 던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보러 오지 않았을 텐데….”

1978년 영국작가 레이먼드 브릭스가 쓴 동화책과 1982년 극장용 단편((26분)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한 ‘스노우맨’. 1993년 영화 주제곡 ‘워킹 인 디 에어’ 등을 작곡한 하워드 블레이크가 영국 버밍엄 레퍼토리와 손잡고 만든 비언어 뮤지컬의 첫 내한공연의 1막은 다소 지루했다. 깊은 밤 눈사람이 살아나서 어린이와 함께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장난치고 논다는 내용만으론 온갖 자극에 길들여진 요즘 아이들을 사로잡기엔 역부족으로 보였다. 뒷좌석에 앉은 초등학생 녀석들도 심드렁한 반응을 보이며 자기들끼리 수다 떨기에 바빴다.

그러나 16년간 영국 연말 흥행 1위 기록을 놓치지 않았다는 명성에 걸맞은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무대가 어두워지고 반투명 스크린에 별빛 조명이 쏟아지는 가운데 ‘워킹 인 디 에어’에 맞춰 주인공 제임스와 스노우맨이 손을 잡고 말 그대로 하늘로 붕 날아오르는 장면에서 아이들의 수다가 멈췄다. 와이어 액션임을 눈치 챈 부모들도 두 주인공이 ‘허공 위의 발레’라 불릴 만큼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나는 장면에 감탄을 금하지 못했다.

20분의 휴식 후 이어진 2막은 다시 비행장면으로 시작해서 북극에 사는 눈사람들과 산타클로스, 얼음공주, 잭 프로스트 등 다양한 캐릭터들의 춤으로 동심을 붙잡는 데 성공했다. 스노우맨이 녹아서 밀짚모자와 목도리만 남은 마지막 장면에서 감수성 예민한 아이들은 울음까지 터뜨렸다. 남극에 사는 펭귄이 등장한 점은 옥에 티였지만. 공연이 끝난 뒤 아들에게 슬쩍 소감을 물었다. “지금까지 본 공연 중 최고”라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12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1577-5266). 4만∼8만 원. ‘구스타프 클림트전’과 ‘인물사진의 거장 카쉬전’으로 인파가 몰리는 탓에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엔 평소보다 여유 있게 나서야 공연시간에 늦어 허겁지겁하는 낭패를 면할 수 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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