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臨政 90주년]<3·끝>신음하는 임정유적

  • 입력 2009년 3월 31일 02시 54분


‘백범일지 산실’ 충칭 오사야항 청사, 재개발로 헐릴 위기

지청천-이범석 장군이 쓰던

광복군총사령부 식당 둔갑

독립운동가 공동묘지는

어디 있는지 위치도 몰라

“한국인 발길 잦아야

中 복원공사 탄력 받을것”

《대한민국임시정부가 1940년 9월∼1945년 11월에 머물렀던 중국 남서부의 충칭(重慶)은 창장(長江) 강의 상류에 있는 도시로 인구 3100만 명에 이르는 경제 중심지다. 임정이 연화지(蓮花池)로 옮기기 전 머물렀던 오사야항(吳師爺巷) 청사는 도심 번화가에서 도보로 10분 거리. 임정이 있던 당시는 70여 칸을 갖춘 2층짜리 목조 가옥이었다. 지금은 나무로 얼기설기 엮어 놓은 문,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계단, 이끼가 잔뜩 낀 마당 등 훼손이 심한 상태다. 집 앞에는 임정 청사였다는 사실을 적은 표지석이 설치돼 있었다.》

고층 빌딩 건축 붐이 한창인 충칭에서 도심에 가까운 이곳이 온전하기를 기대하기는 무리다. 26일 이곳에 도착한 탐방단은 현지 안내 해설사로부터 “재개발로 올해 안에 헐릴 예정”이라는 비보를 들었다. 임정이 연화지로 청사를 옮긴 뒤 오사야항 가옥은 임정 요인들의 숙소로 사용됐다. 또 백범 김구 선생이 ‘백범일지’의 하권을 저술한 곳으로 한국인의 견지에선 보존 가치가 높은 유적이다. 그러나 중국인의 시각에선 재개발해야 할 도심의 낡은 집일 뿐이다.

충칭 도심 한복판의 한국광복군총사령부는 개인에게 넘어가 식당으로 바뀐 지 오래였다. 1층 입구에는 ‘미원(味苑)’이라는 간판이 크게 걸려 있었다. 광복군의 총사령 지청천, 참모장 이범석 등이 사무실로 사용했던 2층에는 당시 모습이 일부 남아있지만 리모델링 공사로 올해 안에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광복군 소속이었던 외할아버지의 자취를 찾아 이곳에 온 윤지애 씨(22)는 “할아버지가 계셨던 곳일지 모르는데 사유지여서 들어가 볼 수도 없다는 게 안타깝다”면서 “원형 보존이 힘들다면 집주인과 협의해서 현판이나 표지석이라도 하나 설치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중국 내 임정 유적지 가운데 상당수는 이미 사라졌거나 도시 개발로 없어질 위기에 처해 있다. 상하이(上海)의 백범 선생 거처인 영경방 터에는 고층 아파트 건설이 한창이었고, 상하이를 떠난 임정이 항저우(杭州)에 처음 자리를 잡았던 청태(靑泰) 청사는 개인 소유의 식당으로 바뀌어 있었다.

창사(長沙)의 임정 청사 자리에는 아파트가 들어서 있어 위치만 추정될 뿐이다. 충칭의 화상산에 있던 한국 독립운동가들의 공동묘지는 야산 형태로 바뀌어 유해 발굴은 고사하고 묘지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는 것조차 어려운 상태다.

해외 독립운동 유적지를 담당하고 있는 독립기념관의 김주용 연구위원은 “개인 소유지에 대해선 힘들지만 중국 정부 소유인 유적은 복원 또는 보존이 되도록 중국 측을 최대한 설득하고 있다”면서 “중국 측이 해당 유적지의 중요성을 알고 한중우의 차원에서 자발적으로 복원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국가보훈처와 독립기념관은 복원되는 유적지에 대해 전시 자문과 전시물 지원을 하고, 안내 해설사를 초청해 한국어 및 역사 교육을 실시한다.

백범 선생이 피격당한 창사 시 남목청(楠木廳)의 조선혁명당본부는 창사 시의 주도로 복원 공사가 한창이다. 시 관계자는 25일 탐방단에 청사진을 보여주며 “기념관 안내를 할 해설사도 이미 뽑아 교육 중”이라고 설명했다. 항저우 시는 시 예산으로 호변촌(湖邊村)의 임정 청사 건물을 새롭게 단장해 2007년 기념관으로 개관했다.

자싱(嘉興)의 일휘교(日暉橋) 17호에 있는 임정 요인 거주지는 저장(浙江) 성의 성(省)급 문화재로 지정돼 임정 기념관으로 운영되는 곳. 저장 성은 올해가 백범 선생 순국 60주기인 점을 감안해 전시물을 전면 교체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임정 연구 전문가인 쑨커즈(孫科志·43) 푸단(復旦)대 역사학과 교수는 “현재 상하이, 충칭 등지에서 복원된 임정 유적들은 비교적 잘 보존되는 편”이라며 “임정의 유적은 한국인뿐 아니라 중국인에게도 애국주의 교육의 매우 중요한 장소”라고 말했다.

중국의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한국 임정 유적을 적극적으로 복원하는 데는 경제적인 이유도 깔려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임정 유적을 매개로 한국인 관광객을 해당 지역에 끌어들이려는 것이다. 하지만 연간 30여만 명이 찾는 상하이 임정 청사를 제외하고는 한국인 방문객이 그다지 많지 않다.

상하이에서 2시간 거리인 항저우의 임정 청사에는 한국인 방문객이 연간 6000명에 그친다. 류저우(柳州) 시는 1시간 거리의 유명 관광지인 구이린(桂林)에 한국인이 많이 오는 점을 감안해 2004년 낙군사(樂群社)를 ‘임정항일투쟁활동진열관’으로 꾸몄지만 한국인 방문은 손에 꼽을 정도다.

탐방단의 강정민 씨(27)는 “말끔하게 복원된 충칭 연화지 임정 청사처럼 모든 유적이 잘 복원되면 좋겠지만 중국의 도시 개발 현황을 보니 어려워 보인다”면서 “복원된 유적이라도 한국 사람들이 많이 방문해서 개발논리에 밀리지 않고 계속 유지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상하이·광저우·충칭=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항저우·자싱·류저우=하종대 특파원 orionha@donga.com


▲동아일보 전영한 기자

“독립지사 기리는 사회 돼야”

진덕규 이화학술원 원장

“강대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살 수 있는 당당한 나라를 이루는 것이 후손된 우리의 책무입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90주년을 맞아 유적탐방 행사에 참가한 진덕규 이화여대 이화학술원 원장(71·사진)은 탐방 나흘째인 26일 중국 충칭(重慶)에서 열린 ‘대한민국임시정부 그리고…’라는 제하의 특강에서 “그럴 때만이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애국지사들을 당당하게 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진 교수는 “민족주의건 사회주의건 사상을 불문하고 독립지사들의 투쟁이 아니었다면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없었다”며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친 독립지사는 좌우를 막론하고 모두 기리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특강의 주요 내용.

“대한민국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아 이룩한 국가다.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길은 모두 임시정부의 헌법과 강령에 들어 있다. 대한민국의 헌법은 임시정부의 헌법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김구 선생이 이끌던 한국독립당은 당시 대강령으로 조소앙(1887∼1958)의 ‘삼균주의’를 내세웠다. 3균이란 ‘균권(均權·정치균등), 균분(均分·경제균등), 균육(均育·교육균등)’을 말한다.

우리는 이미 정치균등이 이뤄진 민주화된 나라에 살고 있다. 하지만 균분과 균육은 아직 멀었다. 가진 자의 오만과 소외된 자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는 사회가 돼서는 안 된다. 학비가 없어 공부를 하지 못하는 학생이 있는 사회여도 안 된다. 이런 사회를 만드는 데는 좌우를 구분할 필요가 없다. 우리의 선조는 독립운동을 하면서 좌우를 구분하지 않았다. 대한민국은 거대한 역사의 물줄기 속에서 한데 엉키고 섞이면서 이룩한 나라다. 적어도 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 항일투쟁을 한 독립지사라면 모두 기리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지하의 독립지사들은 침략자인 일본보다 더 잘사는 대한민국을 보고 싶을 것이다.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강대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당당하게 사는 조국을 보고 싶을 것이다. 함께 그런 나라를 만들어 가자.”

충칭=하종대 특파원 orionha@donga.com

“임정 90주년 행사에 중국인 참여 유도”

김정기 상하이 총영사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90주년을 맞아 한국인끼리 치르는 종래의 방식에서 벗어나 공동으로 항일투쟁을 벌인 중국인도 함께 참여하는 기념행사로 만들려 합니다.”

김정기 주상하이(上海) 총영사(사진)는 30일 “독립지사들의 국난극복 정신을 계승하고 민족적 자긍심과 애국심을 고취하기 위해 학술세미나, 한국 해군함상 리셉션, 글짓기 대회 등 14개의 다양한 행사를 준비 중”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김 총영사는 “중국인에게 임정의 의미를 이해시키고 한중관계를 더욱 다지는 계기로 삼기 위해 한국어 말하기 대회와 임정 90주년을 기념하는 중국인 작가 3인의 시화전, 푸단(復旦)대 학생들을 상대로 한 특강 등이 준비돼 있다”고 덧붙였다.

또 그는 “‘매헌 윤봉길의사 기념사업회’(회장 김학준) 등의 10여 년에 걸친 노력으로 상하이 훙커우(虹口·현 루쉰·魯迅) 공원에 있는 윤봉길 의사(1908∼1932)의 기념관 이름이 최근 의거와 관련 없는 ‘매정(梅亭)’에서 윤 의사의 호를 딴 ‘매헌(梅軒)’으로 바뀌었다”고 소개했다.

김 총영사는 “최근 일각에서 상하이의 임시정부 터가 헐린다는 말이 있는데 사실과 다르다”며 “임정 터 부근 6만여 m²가 고급 아파트와 상가로 재개발되지만 기념관은 그대로 보존될 것”이라고 말했다.

상하이=하종대 특파원 orionha@donga.com


▲ 동아일보 사진부 전영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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