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미술 감상 길잡이 20선]<5>리더를 위한 미술 창의력 발전소

  • 입력 2009년 3월 20일 03시 00분


◇리더를 위한 미술 창의력 발전소/이주헌 지음/위즈덤하우스

《“흔히 창조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은 우리의 위치를 앞으로 이동시켜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출발점으로부터 한참 더 멀어지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확히 말해 창조는 우리의 기원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출발점으로, 뿌리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창조는 우리의 기원으로 돌아가 그 잠재된 힘을 적극적으로 분출해낼 때 이뤄진다.”》

창조하고 싶은가, 일상서 발견하라

‘미술=돈’이 된 시대. 하지만 이 말을 ‘미술품=투자 수단’으로 해석한다면 곤란하다. 저자는 미술품이 감동과 위로를 주는 걸 넘어서 창조와 상상을 위한 영감을 제공해 주는 데 초점을 맞춘다.

미술평론가인 저자는 이 책에서 미술 작품과 화가들에 얽힌 에피소드를 통해 몰입, 연상, 결합, 전복 등 다양한 개념들을 끌어낸다.

일정한 격식을 깨뜨리며 자유로운 연상을 가능케 하는 게 바로 파격의 미학. 저자는 파격의 미학을 실천한 화가로 백남준의 예를 들었다. 제주도에서 칠성굿을 참관하던 어느 날, 그는 칠성신 위패를 가져오지 않은 무당이 순발력을 발휘해 칠성사이다 병을 준비한 걸 보았다. 막힘없는 무당의 융통성에 감탄한 백남준은 훗날 공산품인 텔레비전을 가지고 비디오 아트라는 신천지를 개척했다. 자신 안에 내재해 있는 연상의 힘을 끌어낸 사건 덕분이었다.

전치(轉置)로 번역되는 ‘데페이즈망(D´epaysement)’은 초현실주의 화가 마그리트의 그림 ‘집단적인 창안’ ‘빛의 제국’에서 쓰인 대표적인 기법. 데페이즈망은 특정한 대상을 상식의 맥락에서 떼어내 이질적인 상황에 배치함으로써 기이하고 낯선 상황을 연출하는 것을 뜻한다. ‘집단적인 창안’에서 그는 인어공주와 반대로 상반신은 물고기, 하반신은 사람인 이질적인 합성을 보여줬고 ‘빛의 제국’에서는 공존할 수 없는 낮의 하늘과 밤의 땅을 결합시켰다. 저자는 이를 통해 “데페이즈망은 단순한 파괴에 멈추지 않고 새로운 창조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우연도 미술과 경영에서는 쉽게 지나칠 수 없는 개념이다. 에른스트가 창안한 프로타주 기법도 우연에서 비롯됐다. 1925년 어느 날, 에른스트는 호텔에서 서성이다 우연히 닳은 나무 바닥에 눈이 갔다. 오랜 세월 마찰로 바닥의 나뭇결이 독특한 얼룩무늬를 형성했는데 그게 갖가지 환각을 불러오는 듯했다. 그는 종이를 찾아 바닥 위에 놓고 미친 듯이 연필을 그었다. 초현실주의자로서 에른스트의 명성을 다져준 프로타주 기법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우연이긴 하지만 에른스트가 이전부터 사물의 숨은 이미지를 찾는 다양한 시도를 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운은 따르지 않았을 것이다. 운은 단순히 기다려서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일을 열정적으로 즐긴 결과물인 셈이다.

저자는 발견의 개념도 다시 정의 내린다. 많은 사람이 창조는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이는 수사에 불과하다는 것. “나는 찾지 않는다. 발견한다”고 피카소는 말했다. 이는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먼저 보는 게 발견이라는 뜻이다. 결국 피카소는 화상 칸 바일러가 아들에게 선물한 장난감 폴크스바겐으로부터 원숭이의 얼굴을 보고 ‘개코원숭이 어미와 새끼’라는 조각품을 만든다. 이를 통해 저자는 “머리를 쥐어짜 구상하지 않고 일상에서 새로운 것을 보는 것이 진정한 발견이자 위대한 창조”라고 강조한다.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