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 이 연구]<16>‘주민’ 중심 역사연구 김영미 교수

  • 입력 2009년 3월 13일 02시 58분


“일제 때도 ‘주거지 유흥업소’ 반대 운동”

“우리 학계의 역사 연구는 지나치게 이념적이어서 정작 삶의 문제를 다루지 못했습니다. 역사의 행위자로 주민(住民)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 때문입니다.”

국민대 일본학연구소 김영미 연구교수(42)는 주민을 중심으로 한국사를 연구한다. 역사학계의 분석틀이 돼 온 민족과 계급으로는, ‘인간의 삶을 이해하는 보편적 도구’로서 역사학이 기능하지 못한다는 인식 때문이다. 그가 말하는 주민은 생활공간과 거주지를 공유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서울대 국사학과를 나온 그는 1993년 미 군정기 남한 입법기구를 분석한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받은 뒤 잠시 학교를 떠났다. “(정책과 권력자 중심의) 이 논문이 학계를 제외하고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닐까”라는 자문(自問)에 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후 출판사에서 일하다가 1996년 박사 과정에 들어갔다. 그리고 해방정국 대중의 삶을 다루기 위해 1945년 8월부터 1948년 8월 정부 수립까지 동아일보를 비롯한 신문 사회면을 읽기 시작했다.

“학계에서 해방공간 연구 바람이 불었지만 당시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지는 않더군요. 자료가 없다는 이유였지요. 신문 자료 연구도 정치면 위주였지 사회면 연구는 없었습니다.”

2005년 서울대 박사학위 논문 ‘일제시기∼한국전쟁기 주민동원·통제연구’는 이 연구의 산물이다. 그는 일제가 도입한 주민조직인 정(町)·동회(洞會)를 통해 주민들이 집단행동에 나서 권익을 실현해 나간 과정을 분석했다. 일제강점기 성북동 주민들이 경찰서에 몰려가 요정(料亭) 신규허가를 내주지 말라는 요구를 관철시키고, 물난리가 많았던 이촌동 주민들이 총독부와 경성부에 수년 동안 진정을 넣어 새 주거지로 이주하는 데 성공했다는 사실을 되살려냈다. 이를 토대로 ‘해방 전후 서울의 주민사회사: 동원과 저항’(푸른역사)을 비롯한 10여 권의 책과 10여 편의 논문을 냈다.

김 교수는 최근에는 강원도 양양 고성 등 남북분단 직후에는 북한 지역이었다가 6·25전쟁 이후 남한에 편입된 지역 주민들의 6·25전쟁에 대한 기억을 그려내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그는 “현실적으로 북한 주민을 만나 연구할 수는 없지만 수복지구의 주민 구술을 통해 당시 북한 주민의 생활사를 담아내려 한다”고 했다.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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