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軍 따르는 고종 국장행렬 파노라마식 사진첩 찾았다

  • 입력 2009년 3월 2일 03시 00분


일제에 의해 일본 왕실 가문의 장례식으로 전락한 망국의 설움이 담긴 고종황제 국장(國葬) 과정이 구체적으로 담긴 사진첩이 일반에 공개된다.

한미사진미술관이 3월 7일∼6월 6일 여는 ‘대한제국 황실 사진전’에서다. 한미사진미술관이 일본인 개인 소장가에게서 입수해 공개하는 ‘이태왕국장의사진첩(李太王國葬儀寫眞帖)’은 1919년 1월 22일 승하한 고종의 3월 3일 국장 과정을 담고 있다. ‘이태왕’은 태황제(太皇帝)로 불리던 고종을 일제가 낮춰 부른 명칭.

당시 고종의 국장은 일본식 장례로 치러졌으며 조선 장례의식을 따른 행렬이 뒤를 따랐는데 이 사진첩은 일본식 장례 사진 28점을 먼저 실은 뒤 조선 장례 행렬 사진 10점을 부록으로 담았다. 이경민 사진아카이브연구소 대표는 “이는 전통적인 장례를 구식(전근대적), 일본식 장례를 신식(근대적)으로 본 당시 일제의 시각을 반영한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들은 발인이 시작된 덕수궁 대한문과 동대문운동장 인근 훈련원에 마련된 장례식장의 특정한 장소에서 국장 의식을 시간 순서에 따라 차례로 촬영했으며 사진을 번호로 구분한 뒤 해당 의식을 설명했다.

일본식 의장대와 군악대, 일본 제국주의를 상징하는 욱일승천기를 든 보병대, 일본식 장례 복식을 갖춘 행렬, 이 행렬과 고종의 대여(국상 때 쓰던 큰 상여)를 따르는 순종과 영친왕의 마차를 확인할 수 있다.

고종 국장 사진은 조선총독부 기관지였던 경성일보가 1919년 3월 발행한 ‘덕수궁국장화첩’, 서울대 박물관 소장 ‘이태왕전하장의사진첩’ 등을 통해 알려져 있으나 이번에 공개된 사진첩은 당시 상황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준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최순권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은 “국가적 의식의 과정을 자세하게 적은 의궤의 반차도(국가 의식에 문무백관이 늘어서는 차례와 행사 장면을 그린 그림)를 연상하게 한다”고 말했다. 고종 국장은 그림 없이 글로만 기록돼 있다.

이번 전시에는 순종의 친경식(왕이 밭을 직접 갈고 농사를 권장하는 의식), 고종과 순종의 어진, 영친왕과 이우(의친왕의 아들)의 초상 등 50여 점을 선보인다. 관람료 5000원, 관람시간 평일 오전 10시∼오후 7시, 주말 및 공휴일 오전 11시∼오후 6시 반. 02-418-1315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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