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학사업으로… 추모사업으로… 부활하는 ‘추기경의 사랑’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2월 21일 02시 59분


“金추기경님 안녕히…” 김수환 추기경을 추모하는 행렬은 장례식이 치러진 20일에도 끝없이 이어졌다. 이날 오전 서울 명동성당을 출발해 장지인 경기 용인시 천주교 서울대교구 성직자묘역으로 향하는 김 추기경의 운구차가 지나는 곳마다 많은 시민이 나와 김 추기경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용인=이훈구 기자
“金추기경님 안녕히…” 김수환 추기경을 추모하는 행렬은 장례식이 치러진 20일에도 끝없이 이어졌다. 이날 오전 서울 명동성당을 출발해 장지인 경기 용인시 천주교 서울대교구 성직자묘역으로 향하는 김 추기경의 운구차가 지나는 곳마다 많은 시민이 나와 김 추기경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용인=이훈구 기자
2002년 설립 옹기장학회 “추기경 뜻이어 계속 사업”

에이즈 어린이 돕기 김수환 장학재단도 출범 관심

문화부, 金추기경 장례과정 국가기록물로 보관키로

김수환 추기경은 우리 곁을 떠났지만 추기경이 관여했던 장학사업은 계속 이어진다. 추기경을 기리는 새로운 기념사업도 추진된다.

김 추기경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업은 북방선교를 위한 사제 양성을 후원하겠다는 취지로 2002년 김 추기경과 한승수 국무총리 등이 공동 설립한 ‘옹기장학회’다. 옹기장학회는 김 추기경이 자신의 호를 따서 이름을 지어준 것이다. 이 장학회는 2002년 11월 출범 이후 지난해까지 모두 87명에게 1억8000만 원을 전달했다. 설립 당시 재계 인사 10여 명과 함께 발기인으로 참여한 한 총리는 16일 “추기경의 뜻을 계속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충북 음성의 꽃동네 설립자인 오웅진 신부가 설립 계획을 19일 밝힌 ‘김수환장학재단’은 이례적으로 김 추기경의 ‘실명’을 내건 사업이다. 오 신부는 “지난해 말 김 추기경으로부터 이름을 쓰는 것을 허락받았다”며 “평소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이즈) 환자와 어린이를 돕는 일에 관심이 많았던 추기경의 뜻을 기려 에이즈에 걸린 전 세계 어린이를 후원하겠다”고 밝혔다.

김 추기경을 기리는 새로운 기념사업은 서울대교구와 경북도청을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북도는 추기경의 옛집(경북 군위군)이 있는 곳이다.

특히 김 추기경 기념관 건립은 정부가 지원 의사를 밝혔으며 서울대교구의 협의를 거치면 곧바로 추진된다. 권경상 문화체육관광부 종무실장은 “가톨릭 쪽에서 건립 추진의 뜻을 밝히고 협조를 요청해오면 정부 차원에서 예산과 콘텐츠 제공 등 적극 뒷받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기념관 건립에 대해서는 서울 종로구 혜화동 가톨릭대에 추기경의 유품을 모아놓은 ‘김수환 추기경관’이 있는 데다 생전에 거창한 행사를 만류했던 추기경의 유지에도 어울리지 않는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천주교 주교회의의 한 주교는 “서울대교구에서 뭔가 하기는 할 텐데 주변 상황을 더 지켜보자는 분위기 때문에 구체화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경북 군위군은 군위읍 용대리에 있는 김 추기경의 옛집 주변에 기념관과 성모동산 및 추모비를 세우는 추모공원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대구 남산동에서 태어난 김 추기경은 네 살 때 가족과 함께 이곳으로 이사해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살았다. 경북도청은 “천주교가 김 추기경의 옛집을 성지화하거나 기념관 조성을 추진하면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김 추기경의 장례 과정 전반을 국가기록물로 보관하기로 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일 “한국 최초의 추기경인 김 추기경의 선종과 관련된 모든 자료는 가톨릭뿐 아니라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기록 보존의 가치가 있다”며 “국립민속박물관의 의궤기록팀이 장례 절차를 문서, 사진, 동영상으로 기록했다”고 밝혔다.

국립민속박물관은 2006년 성철 스님 다비식, 2005년 조선 마지막 왕손 이구 영결식 등을 기록해 보존하고 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하느님께서 고귀한 영혼에 기쁨과 평화 주시길”

교황 베네딕토 16세 추모사▼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님의 선종 소식을 듣고 깊은 슬픔을 느끼며 추기경님과 모든 한국인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오랫동안 서울의 가톨릭 공동체를 위하여 헌신하시고 추기경단의 일원으로서 여러 해 동안 교황에게 충심으로 협력하신 김수환 추기경님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억하며, 저는 여러분과 함께 자비로우신 하느님 아버지께서 그분의 노고에 보답해 주시고 그분의 고귀한 영혼을 하늘나라의 기쁨과 평화로 맞아들여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장례 미사에 모인 김수환 추기경님의 친족과 모든 분에게 하느님의 힘과 위로에 대한 보증으로서 진심으로 사도의 축복을 보내드립니다.

▼“이분법 시대, 마음 연 대화로 이젠 사랑합시다”

이명박 대통령 추도사▼

오늘 우리는 이 나라를 지탱해 온 큰 기둥이셨고, 우리의 나아갈 길을 가르쳐 주신 큰 어른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님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배웅하려고 합니다. 추기경님의 선종을 온 국민과 함께 깊이 애도합니다.

추기경님께서는 가톨릭계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지도자로서 항상 병든 자, 가난한 자, 약한 자와 함께하셨습니다. 산업화 시대에는 소외된 노동자들 편에서 불의와 부정에 맞서 정의를 말씀하시고 행동하셨고, 민주화 시대에는 국민의 편에서 권위주의에 맞서 정권의 압박을 온몸으로 막아내셨습니다.

‘네 편 아니면 내 편’이라는 이분법이 팽배한 요즘에는 타인을 존중하고 마음을 열고 대화할 것을 가르치셨고, 그러면서도 원칙을 잃지 않으셨습니다. 권력이 오만해지거나 부패할 때에는 준엄히 꾸짖으셨고 시류에 휩쓸려 흔들릴 때에는 가야 할 바른 길을 일러주셨습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서 소중한 분을 데려가시면서 우리가 진심으로 뉘우치고 변화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우리 모두 추기경님이 남기고 간 뜻을 받들어 서로 사랑합시다.

추기경님은 우리 곁을 떠나지만 우리 마음속에 영원히 함께할 것입니다.

▼“정신적 지주로 기억될 것”

클린턴 美국무 애도 표명▼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20일 한미 외교장관회담을 마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김수환 추기경에 대한 애도의 뜻을 나타냄으로써 조문을 하지 못한 것을 대신했다.

클린턴 장관은 “김 추기경은 한국 국민과 전 세계의 정신적 지주였다”며 “김 추기경은 민주주의와 인권, 인간의 존엄성을 중시하는 모든 사람에게 오래 기억될 것”이라고 애도의 뜻을 나타냈다.

클린턴 장관은 19일 명동성당의 김 추기경 빈소를 방문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으나 성사되지 못했다. 한 외교소식통은 “국무부 본부팀이 클린턴 장관의 일정을 변경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장례위 “조문 뜻 감사… 마음만 받겠다”

장례위원회 홍보담당인 허영엽 신부는 “클린턴 장관 측이 19일 서울대교구 조규만 주교 등에게 조문 절차를 문의해 왔다”며 “장례미사 일정 때문에 오전 8시 방문을 조율하다가 무산됐지만 클린턴 장관 측의 조문 의사를 고맙게 생각하고 그 마음은 기꺼이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우정열 기자 passi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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