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이야기는 살벌해도 음악은 달콤”

  • 입력 2009년 2월 19일 02시 58분


뮤지컬 ‘마이 스케어리 걸’에서 대본·작사와 음악을 각 각 맡은 강경애씨(오른쪽)와 미국인 윌 애런슨 씨.  염희진 기자
뮤지컬 ‘마이 스케어리 걸’에서 대본·작사와 음악을 각 각 맡은 강경애씨(오른쪽)와 미국인 윌 애런슨 씨. 염희진 기자
‘찌질남’ 황대우와 ‘엽기녀’ 이미나의 달콤 살벌한 연애 담을 그린 영화 ‘달콤 살벌한 연인’을 원작으로 한 뮤지 컬 ‘마이 스케어리 걸’. 사진 제공 뮤지컬해븐
‘찌질남’ 황대우와 ‘엽기녀’ 이미나의 달콤 살벌한 연애 담을 그린 영화 ‘달콤 살벌한 연인’을 원작으로 한 뮤지 컬 ‘마이 스케어리 걸’. 사진 제공 뮤지컬해븐
뮤지컬 ‘마이 스케어리 걸’작사 강경애 작곡 윌 애런슨

#그 여자(강경애)의 사연=2005년 미국 뉴욕대의 뮤지컬 수업시간, 교수는 ‘시크릿’을 주제로 가사와 곡을 써오라는 과제를 내줬다. 친구들에게 차마 말하지 못했던 나만의 비밀. 그건 영어 콤플렉스였다. 뉴욕 생활 2년째 좀체 늘지 않는 영어 때문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욕을 해도 내 대답은 한결같았다. ‘아임 소 소리’. 그래서 끼적였던 게 ‘I wish I could speak English like American, No more konglish’라는 가사의 ‘노 모어’라는 곡이었다.

#그 남자(윌 애런슨)의 사연=같은 반 경애의 가사에 곡을 붙여줬다. 얼마나 영어 때문에 고통받았을까. 여러 친구가 이 가사에 곡을 붙여줬지만 경애는 유독 내 멜로디를 마음에 들어 했다. 영어 콤플렉스를 이렇게 신경질적으로 표현한 노래는 없었기 때문이라나. ‘노 모어’는 미국 베링턴스테이지컴퍼니가 주최하는 뮤지컬 워크숍 ‘아마도 당신이 지금은 모르겠지만 반드시 알아야 될 뮤지컬 작가들’에 처음 선보이게 됐고. 우리의 두 번째 합작품은 뮤지컬 데뷔작인 ‘마이 스케어리 걸’이 됐다.

○ 뉴욕大 선후배 사이 ‘찰떡궁합’

30년 평생 연애 한번 못 해본 ‘찌질남’ 영어강사 황대우, 매일 밤 옷에 흙을 묻힌 채 가방을 들고 다니는 수상한 여인 이미나. 이들의 달콤 살벌한 연애담이 무대로 옮겨진다. 2006년 개봉돼 ‘발칙한 설정’이라는 평을 들었던 영화 ‘달콤 살벌한 연인’이 3월 6일 서울 중구 충무아트홀 소극장 블랙에서 뮤지컬 ‘마이 스케어리 걸’이라는 이름으로 무대에 오른다.

이 작품의 숨은 주역은 대본·작사와 음악을 각각 맡은 강경애 씨(35)와 미국인 윌 애런슨 씨(28). 둘 다 뉴욕대에서 뮤지컬 극작을 전공한 선후배 사이다.

강 씨는 애런슨 씨의 1년 선배. ‘마이 스케어리 걸’을 제작자인 박용호 뮤지컬해븐의 대표가 이 작품에 어울리는 작가와 작곡가를 수소문하던 중 친분이 있던 뉴욕대 교수가 강 씨를 추천했고 그는 자신의 파트너로 애런슨 씨를 추천했다. 강 씨는 한국에서 라디오 ‘싱글벙글쇼’ TV ‘21세기 위원회’ 등을 쓴 방송작가 출신. 애런슨 씨는 하버드대에서 오페라 작곡을 전공했다.

이 작품을 하기 전까지 한국에 대해 몰랐다는 애런슨 씨는 뮤지컬 작업을 하면서 강 씨에게서 한국 가수 앨범 몇 장을 건네받았다. 그때부터 가수 김동률, 유희열의 음악을 즐겨 듣게 됐고 송대관의 ‘네 박자’까지 들으며 한국 관객의 음악 취향을 익혔다.

“김치냉장고 속에서 사람들이 본의 아니게 죽어나가는 작품 내용이 살벌하잖아요. 하지만 음악만큼은 달콤하게 가자고 했어요. 중간중간에 살 떨리는 장면들에는 오페라 같은 웅장한 음악을 쓸 겁니다. 하지만 이야기 흐름을 이끌어가는 음악은 한국의 가요처럼 말랑말랑할 거예요.” (애런슨 씨)

○ 영화와는 달리 귀신이 話者

영화와 달리 뮤지컬에서는 ‘김치냉장고’ 속 귀신이 극을 설명하는 화자 역할을 한다. 영화가 대우의 시선으로 본 미나의 이야기였다면 뮤지컬에서는 미나의 독백이 삽입되는 것도 다른 점.

영화 개봉 전부터 뮤지컬 작업에 들어갔던 이 작품은 3년간 여러 번의 시도와 실패를 거쳤다. 지난해 7월 5, 6일 대구뮤지컬페스티벌에서 실험작 형식으로 선보였고, 같은 달 중순 미국 베링턴스테이지컴퍼니의 워크숍에서 미국 스태프, 배우, 영어 대사로 제작된 작품으로 무대에 올랐다. 미국 공연이 엽기적인 장면보다 톡톡 튀는 말과 슬랩스틱 코미디를 구사하는 유쾌한 코미디인 데 비해 한국 공연은 로맨틱 코미디보다 사랑 이면의 씁쓸함을 담아내는 드라마에 방점을 찍었다.

“왜 한국 사람들 만나면 서로 직업, 가족 등을 묻는 호구 조사하잖아요. 하지만 살다 보면 그런 것들이 거짓으로 드러날 수도 있고 반대로 보지 못한 진심을 발견할 수도 있는 거죠.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정말 어떤 사람인지 되묻고 싶었어요.”(강 씨)

“이 작품을 하면서 한미 간 유머코드의 차이점과 한국 문화에 대해 익힐 수 있었어요. 뮤지컬을 계속할 수 있다면 강 작가와 함께 영화 ‘살인의 추억’을 뮤지컬로 만들어보고 싶네요.”(애런슨 씨) 5월 17일까지. 4만5000원. 02-1544-1555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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