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山의 은혜, 학교로 갚은 사나이

  • 입력 2009년 2월 14일 02시 58분


◇세 잔의 차/그레그 모텐슨, 데이비드 올리비에 렐린 지음·권영주 옮김/484쪽·1만3500원·이레

K2등반 도중 오지마을서 목숨 건져

사재-기금 모아 ‘배움의 꿈’ 심어줘

1993년 9월 2일, 산악인 그레그 모텐슨 씨는 히말라야의 K2를 오르다 길을 잃고 일행과 떨어졌다. 이날 등정은 23세 생일 때 심한 발작을 일으켜 세상을 떠난 여동생 크리스타를 위한 등정이었다. 동생이 남긴 목걸이를 해발 8611m의 K2 정상에 두고 오려 한 것이다.

그날 밤을 산에서 자며 겨우 목숨을 부지한 그는 우여곡절 끝에 히말라야의 발치에 있는 마을 코르페에 도착했다. 촌장 하지 알리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은 정성껏 그를 돌봤다.

모텐슨 씨는 어느 날 학생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허허벌판의 차가운 땅 위에 앉아 수업을 듣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막대기로 땅 위에 구구단을 적고 있었다. 그는 촌장 알리에게 약속을 했다. “제가 학교를 지어 드리겠습니다.”

그날 이후 그는 학교를 짓기 위한 기금을 모으고, 직접 자재를 사러 다니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박애주의자’란 거창한 타이틀을 달고 일을 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약속을 지키기 위한 일이었다. 이 책은 코르페 마을에 학교를 짓기까지의 과정을 중심으로 그의 활동을 상세하게 소개했다.

미국으로 돌아온 뒤 그는 명사 580명에게 기부를 부탁하는 편지를 보냈다. 그러나 6개월 만에 돌아온 답장은 고작 1통. 편지에는 행운을 비는 짤막한 글과 100달러짜리 수표가 들어 있었다. 그러던 중 서광이 비쳤다. 수억 달러의 자산가 장 회르니라는 사람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 역시 산악인으로서 히말라야 지방의 열악한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회르니 씨로부터 1만2000달러를 받은 모텐슨 씨는 자신이 갖고 있던 자동차와 등산 장비를 팔아 여비를 마련했다.

파키스탄에 도착한 그는 목재상, 시멘트 업체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물건을 구입했다. 트럭에 싣고 마을로 향하던 중 탈레반을 만나 발이 묶이기도 하고, 일부 자재를 잃어버리기도 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코르페 마을에 도착한 그를 마을 사람들은 “꼭 약속을 지킬 줄 알았다”며 반겼다.

마을 사람들은 산 밑에서부터 직접 목재를 나르고, 바위를 깨뜨려 벽을 쌓을 석재를 만드는 등 일심동체가 돼 학교 짓는 일에 몰두했다. 그러나 예상보다 진도가 느렸다. 이에 조바심을 내는 모텐슨 씨에게 알리 촌장은 말했다.

“이곳 사람과 처음에 함께 차를 마실 때 자네는 이방인일세. 두 번째로 차를 마실 때는 영예로운 손님이고, 세 번째로 차를 마시면 가족이 되지. 가족을 위해서라면 우리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네. 죽음도 마다하지 않아. 닥터 그레그, 세 잔의 차를 함께 마실 시간이 필요한 거야.”

그는 코르페 사람들에게 약속한 학교를 마침내 짓고 나서도 이 일을 그만둘 수 없었다. 다른 곳에도 학교를 지어 달라는 요청이 잇따랐기 때문이다. 그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기부를 하는 사람이 늘었다. 중앙아시아기구(CAI)라는 비영리 단체까지 만든 그는 지난해까지 78개의 학교를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의 산악 마을에 설립했다. 파키스탄 사회의 각 계층과 각 이슬람 종파에서 그를 따르는 자원봉사자도 줄을 이었다.

그는 이 일을 하면서 오히려 현지 사람들로부터 큰 교훈을 얻었다고 말한다.

“하지 알리는 나에게 세 잔의 차를 함께 마시라고, 학교를 짓는 것 못지않게 관계를 맺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라고 가르쳐줬습니다. 내가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서 배울 게 내가 그 사람들에게 감히 가르쳐줄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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