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클림트]팜 파탈, 그 치명적 유혹의 완성

  • 입력 2009년 1월 22일 02시 55분


미술관장이라고 밝히면 사람들은 마치 입이라도 맞춘 듯 내게 동일한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화가는 누구인가? 하지만 민망하게도 동일한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매번 달라진다. 좋아하는 화가의 순번이 자주 바뀌는 것은 변덕이 심해서도, 그림에 대한 취향이 불분명해서도 아니다. 당시에 처한 상황이나 감정이 그림에 투영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고독할 때는 호퍼, 행복할 때는 르누아르, 고통을 겪을 때는 베이컨, 아름다운 자연풍경 속에서는 모네의 그림이 단연 최고라고 느껴지는 것이다.

요즘에는 클림트의 그림이 온통 마음을 사로잡는다. 아마도 2월 2일부터 5월 15일까지 서울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개최되는 클림트 전시회를 고대하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클림트의 열혈 팬은 비단 나뿐만이 아닌 듯하다. 미술애호가는 물론 미술과 거리가 먼 사람들마저 클림트전을 화제로 삼을 정도이니 말이다. 클림트의 그림은 왜 그토록 인기가 높을까?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에로티시즘을 예술로 승화

클림트는 인간의 숨겨진 본능인 에로티시즘을 예술로 승화한 거장이기 때문이다. 클림트의 시절, 세기말적 증후군인 불안에 감염된 유럽인들은 삶의 허망함과 죽음의 공포를 잊기 위해 성적 쾌락에 탐닉했다. 이런 시대 분위기는 클림트의 예술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그는 성과 죽음, 탄생과 소멸이 삶의 본질이라고 믿게 되었으며, 그런 자신의 신념을 여성의 매혹적인 육체를 빌려 표현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클림트는 자칫 퇴폐적이거나 선정적으로 전락할 수 있는 주제인 에로티시즘을 신비의 영역으로 격상시키기 위해 관능과 성스러움이라는 상반된 요소를 이종교배한 이른바 클림트표 화풍인 황금양식을 개발했다. 황금양식이란 화면을 황금빛 색채로 물들이고, 인물의 의상을 화려한 문양으로 장식하고, 사치스러운 금박 은박 등의 재료를 풍부하게 사용한 화풍을 가리킨다. 관능미를 독창적인 화풍에 절묘하게 결합한 덕분에 그는 에로틱 회화의 신천지를 개척할 수 있었다. 클림트가 미술사에 선물한 또 다른 업적을 소개한다면, 팜 파탈이라는 생소한 용어를 대중에게 전파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황금양식으로 신천지 개척

팜 파탈(femme fatale)이란 ‘숙명의 여인’을 뜻하지만 일반적으로 섹시함을 미끼삼아 남성을 유혹하고 파멸시키는 요부를 가리킨다. 당시 유럽예술가들 사이에서 아름다운 악녀들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예술가들은 살롱이나 카페에서 신종 요부인 팜 파탈을 단골주제로 삼아 열띤 토론을 벌였고, 팜 파탈을 우상처럼 숭배했다. 세기말 몬스터에 매료된 숱한 화가들이 경쟁적으로 요부를 그림에 선보였지만 그 누구도 클림트처럼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팜 파탈을 창조하지 못했다. 클림트가 창조한 팜 파탈은 불멸의 존재가 되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영화, 드라마, 소설, 광고의 꽃인 천사표 여성들을 위협하고 있다.

만일 이 글을 읽는 독자가 클림트전에서 ‘유디트 Ⅰ’을 감상하는 행운을 누리게 된다면 두려움은 성적 욕망에 기름을 붓고, 욕정은 억압할수록 강렬해지며, 남성은 순종적인 여성보다 위험한 여성에게 매혹당한다는 것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이명옥 사비나미술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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