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선교사가 겪은 ‘조선의 감옥’

  • 입력 2009년 1월 22일 02시 55분


족쇄 채워 입감신고… 웅덩이 물로 목욕… 도둑은 잠도 못자게…

《이방인의 눈으로 본 19세기 말 조선 감옥의 풍경을 담은 책이 처음 번역돼 출간됐다. 포교활동을 하다가 1878년 1∼6월 한양 포도청에 수감됐던 프랑스인 선교사 펠릭스 클레르 리델(1830∼1884) 주교의 수감생활 회고록 ‘나의 서울 감옥 생활 1878’(살림)이다. 》

19세기 말 리델 주교 회고록

리델 주교는 한국 최초의 프랑스어사전인 ‘한불자전’(1880년)과 첫 한국어 문법책인 ‘한어문전’(1881년)을 간행할 만큼 한국어에 능통했다. 그는 신입 죄수의 입방 신고식부터 죄목별 차등대우까지 보고 듣고 경험한 조선 감옥의 모습을 세세하게 묘사했다.

당시 새로 죄수가 들어오면 통과의례였던 것이 ‘차꼬’라고 불리는 나무로 만든 족쇄를 채우는 것이었다. 목판 두 개를 맞대 놓은 것으로 길이 4m, 폭 15cm가량인 이 족쇄를 발에 채우며 옥졸(獄卒)들이 그에게 한 말은 “이것이 이곳의 관례이고 방손님을 처음 받으면 손님의 발을 이 기구 안에 넣어 놓게 한다”였다.

옥졸들과 포도대장은 그에게 호의적이었다. 독감에 걸린 리델 주교를 본 옥졸은 포도대장에게 달려가 이 사실을 알렸고 포도대장은 추위를 막으라고 큰 병풍을 보내주고 탕약도 보내주었다. 포도대장 휘하의 포도부장은 추운 감방에 불을 때라고 나무를 살 수 있는 돈을 건네줬고 옥졸들은 돈을 받지 않고 자신들의 돈으로 땔감을 사서 불을 때주었다.

죄수들은 벼룩과 이 때문에 긁적거렸다고 한다. 갈아입을 옷을 따로 제공하지 않았고 물이 부족해 감옥 마당 한가운데 웅덩이의 물로 몸을 씻어야 했기 때문.

죄목에 따라 죄수 처우는 크게 달랐다.

죄수들은 주로 도둑과 빚쟁이, 천주교 신자 등 세 부류였는데 도둑의 처우가 가장 낮았다. 리델 주교가 감옥에 있을 때 도둑 죄수 30여 명이 있었는데 그들은 밤낮으로 발에 족쇄를 차고 있어야 했고 잠도 자지 못했다. 졸기라도 하면 옥졸들이 방망이로 후려쳤다고 한다. 앓고 있어도 약을 주지 못하게 돼 있고 매질을 면제 받지도 못했다.

빚 때문에 투옥된 죄수들은 훨씬 나은 대우를 받았다. 친지나 벗들과 연락할 수도 있었고 감옥 밖에서 면회객의 음식을 받아먹을 수도 있었다. 신자들은 옥에서 음식을 먹고 외부인과 연락을 취할 수도 없었지만 보통 족쇄를 차지는 않았다. 잠을 못 자게 괴롭힘을 당하지도 않았다.

풀려나는 수감자가 남은 자들의 석방을 기원하며 베푸는 잔치, 죄수들이 혐오하는 인물 등 다양한 조선 감옥의 이야기를 담았다. 한국과 관련한 희귀한 서양고서를 번역하는 ‘그들이 본 우리’ 총서 시리즈(살림)의 6번째 도서다.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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