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연극 하든 뮤지컬 하든 배우는 배우일 뿐”

  • 입력 2009년 1월 15일 03시 01분


연극 ‘아일랜드’로 떠난 조정석(왼쪽) 양준모 씨는 “춤과 노래에 기대지 않고 오직 배우의 호흡으로 이끌어 가는 연극을 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변영욱 기자
연극 ‘아일랜드’로 떠난 조정석(왼쪽) 양준모 씨는 “춤과 노래에 기대지 않고 오직 배우의 호흡으로 이끌어 가는 연극을 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변영욱 기자
연극 ‘아일랜드’로 떠나는 뮤지컬 배우 조정석-양준모

《1974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초연된 연극 ‘아일랜드’는 남아공의 한 수용소에 갇힌 흑인 죄수 존과 윈스턴의 2인극이다. “다들 처음엔 웃겠지만 나중엔 웃음이 쏙 들어갈 거다”라는 존의 명대사처럼 속박과 자유, 떠난 자와 남겨진 자에 대해 진지한 물음을 던진다. 1977년 윤호진 씨의 연출로 한국 무대에 오른 이 작품은 이승호 서인석 이호재 김갑수 씨 등이 거쳐 가며 연기파 배우들의 등용문이 됐다.》

상반된 이미지… 서른 살 동갑내기

“장르 뛰어넘기 아닌 연기 뿌리찾기”

초연 이후 35년 만인 2009년, 그 ‘아일랜드’가 2월 14일 미래 버전으로 공개된다.

무대는 1970년대 감방에서 첨단 감옥으로 바뀌고, 주제도 인종차별에서 인권 문제로 중심이 이동됐다. 초연 당시 대사에서만 언급됐던 교도관 호로시는 죄수를 24시간 감시하는 컴퓨터가 대신한다.

주목할 점은 존과 윈스턴역을 맡으며 내로라하는 선배의 뒤를 이을 배우가 서른 살 동갑내기 뮤지컬배우 조정석 양준모 씨라는 점이다. 두 배우의 연극 출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뮤지컬에서 자리 잡은 배우들이 왜 연극이라는 ‘아일랜드’로 떠난 걸까. 13일 서울 종로구 명륜동 합숙 현장을 찾았다.

“연기에 목말랐어요. 그래서인지 한 번도 제 연기에 만족해 본 적이 없었어요. 성악(한국예술종합학교 성악전공)을 해서 연기를 정식으로 배워 본 적도 없고…. 연기의 정석을 밟고 싶었죠.”(양 씨)

“서른 살, 뮤지컬만 했다면 계속 똑같이 살았을 거예요.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진보해야 하잖아요? 전 머뭇거리고 싶지 않았을 뿐이에요.”(조 씨)

2004년 뮤지컬로 데뷔한 동갑내기. 언뜻 보면 닮은 구석이 많지만 두 배우는 다른 길을 걸어왔다.

‘헤드윅’ ‘이블 데드’ ‘그리스’에 출연하며 누나 팬이 많은 조 씨는 미끈하게 생긴 ‘꽃 미남’ 스타일. 반면 ‘스위니토드’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에 출연한 양 씨는 선이 굵고 강한 남성적 캐릭터다.

조 씨는 “내가 27세 때 더 젊은 이미지의 역할을 주로 맡은 반면 준모는 예순 살 왕과 같은 역을 주로 했다”며 둘의 차이점을 설명했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선 기존 이미지와 상반된 역할이 주어졌다. 영악하고 심지가 굳은 정치범 존 역에는 조 씨가, 순진무구한 죄수 윈스턴 역은 양 씨가 맡은 것.

연출가 임형철 씨는 “이왕 연극으로 모험을 해볼 바엔 관객의 머릿속에 박힌 배우 이미지까지 뒤집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뮤지컬엔 춤 노래 연기가 있지만, 연극은 배우가 무대 위에서 내보일 게 연기밖에 없잖아요. 제가 잘하는 노래도 없고, 마이크도 없으니 발가벗겨진 기분이 들어요.”(양 씨)

반면에 조 씨의 고민은 달랐다. “대사를 맞추고 호흡을 조절해야 하는 건 어려울 것 같지 않다”는 것. “지금 저의 고민은 얼마나 깊이 있는 진정성을 보여줄 건가죠. 대학(서울예전 연극과) 때 알코올의존증 환자 역을 맡았던 적이 있었어요. 항상 가방에 소주를 넣고 다니며 취해 살았죠. 그 시절의 무모함을 과연 되찾을 수 있을지 그게 걱정이에요.”(조 씨)

뮤지컬배우와 영화배우들의 연극행이 잦아지는 요즘, 혹시 둘의 연극 출연이 일회성 이벤트는 아닐까. 질문을 하자마자 인터뷰 내내 진지하던 둘이 펄쩍 뛴다.

“사람들이 우리를 뮤지컬배우라고 불러요. 하지만 결국 배우는 배우일 뿐이죠. 지금은 10점짜리 배우지만 이 연극을 통해 50점짜리 배우가 될지 누가 알아요.”

일시적인 장르 뛰어 넘기가 아닌 진짜 배우로 거듭나기 위한 뿌리 찾기로 봐 달라는 둘의 표정이 절실해 보인다. 2월 14일∼4월 5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SM극장. 02-764-8760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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