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연극상 5관왕 ‘원전유서(原典遺書)’ 작가 김지훈-배우 김소희 씨 인터뷰
쭉 찢어진 눈초리와 단호한 입매, 큰 두상에 바가지 형태로 머리를 길게 기른 김 작가는 원전유서의 연출가인 이윤택 씨를 빼닮았다. 연희단거리패 단원들은 그를 ‘리틀 이윤택’으로 부른다.
“외모만 닮은 게 아니죠. 두 사람 모두 일상적 담론보다는 거대 담론을 좋아하고 리얼리즘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신화적 이야기를 좋아하죠. 이 선생님이 사람들과 어울려 담론을 펼치는 것을 좋아하는 반면 김 작가는 혼자서 골똘히 침잠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 정도가 다를까.”(김 대표)
울산지역 공고 출신의 김 작가는 뒤늦게 문학창작의 길로 뛰어들어 2004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됐다. 2006년 생애 첫 희곡으로 대산대학문학상을 받은 뒤 연출가 이 씨가 이끄는 ‘우리극연구소’에서 연기공부를 하며 원전유서를 완성했다. 고졸 학력의 부산지역 문학도에서 출발해 엄청난 자생력으로 연극, 방송, 영화, 출판 등 전방위 문화활동으로 ‘문화 게릴라’라는 명성을 얻은 이 씨의 인생행로와 닮았다.
“자기만의 세계에 빠진 요즘 문학계와 달리 연극판에선 타인과의 소통이 중요합니다. 연극계가 원전유서처럼 무겁고 길고 관념적 작품을 진지하게 받아줄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소통의 힘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김 작가)
그는 “배우들이 서점엔 가지 않고 성형외과로 가고, 내 또래의 작가들이 자신만의 정자를 짓고 우물 안 개구리처럼 지내고 있다”며 거침없는 비판을 가했다. 그 역시 안정된 삶에 안주할까 봐 대학졸업장도 포기했다. 이 시대의 실업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을 차기작으로 준비하고 있다.
그의 모습에서 프로야구계 ‘괴물’로 불리는 투수 류현진이 겹쳐진다. 속내를 읽을 수 없는 포커페이스에 내로라하는 베테랑들도 질겁하게 하는 강속구를 뿜어내는 겁 없는 신인이다.
반면에 서글서글한 이목구비를 지닌 김 대표는 그 ‘괴물’을 강가에 내놓은 어린애처럼 보살피는 어머니 같았다.
국내 연극 작품 중 최장 상연시간(4시간 반) 기록을 세운 원전유서는 관념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호흡이 긴 대사로 구성돼 있다. 하지만 정작 이 작품의 어진네 역으로 여자연기상을 휩쓴 그에겐 대사가 거의 없다. 쓰레기하치장이란 불모지대를 밭으로 일구며 자신과 어린 두 자식에게 쏟아지는 무자비한 폭언과 폭력을 신음과 침묵으로 감내하는 어머니 역이다.
“원래 부당한 것은 절대 못 참는 성격이라 어진네가 가슴으로 이해가 안 돼 맘고생이 심했어요. 원래 혼자선 연습 안 하는데 무대에 오르기 보름 전쯤 골방에서 제가 평소에 짓지 않는 멍하고 어눌한 표정을 ‘폰카’로 찍어 놓고 거울을 보며 연습을 했어요. 그렇게 몰입하다 보니 표정뿐 아니라 정말 말까지 어눌해지더라고요.”
김 작가는 그렇게 변해가는 김 대표를 보면서 남몰래 ‘어진네’의 모델로 삼은 자신의 어머니와 똑같이 느껴져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미혼인 김 대표가 그 같은 모성애를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2005년 동아연극상 신인연기상을 수상한 뒤 3년 만에 연기상을 거머쥔 그의 독특한 이력과 겹쳐졌다.
“1998년 서울연극제에서 신인상을 받은 제가 2005년 신인상을 받는 게 맞느냐고 후배들이 놀린다는 얘기를 꺼냈다가 유인촌 선배님에게 ‘연극판에선 넌 아직 신인에 불과하다’고 혼난 적 있어요. 그 뒤 신인상이 유인촌신인상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동아연극상에서 2년간 4명의 여배우만 받은 희귀 상을 받은 셈이 됐어요.”
어린 누이 같으면서 동시에 늙은 어미처럼 다가서는 배우 김소희의 매력을 발견한 순간이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원전유서는 쓰레기 매립지 빈민촌 무대… 인간의 조건-구원 다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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