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박일호]신윤복을 여자로 만든 죄

  • 입력 2008년 12월 13일 02시 58분


오래된 일인데 최불암 씨가 국회의원인 적이 있었다. 문화관광위원회 소속이었던 그에게 농촌 관련 민원이 많이 몰렸다고 한다. TV 드라마 ‘전원일기’에 나오는 김 회장의 이미지 때문이다. 드라마를 통해 만들어진 이미지가 현실의 최불암 씨를 판단하는 잣대가 되었음이다. 드라마 ‘허준’이 인기를 끌 무렵, 한의원이 성황을 이뤘다. 드라마 속 허준이 이곳저곳에 등장하며 신통력을 발휘하는 한의사로 연출된 결과이다. 물론 드라마의 극적 전개도 한몫했을 것이다. 이처럼 TV 드라마 속 이미지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우리는 이미지가 현실을 대신하는 시대, 이미지로 현실을 판단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프랑스 문화이론가 장 보드리야르는 이런 우리 시대를 시뮐라크르 문화의 시대라고 말한다. 시뮐라크르란 원본이 없는 복제물, 원본 없이 만들어진 구성물을 뜻한다. 원본과 복제물의 구분이 없는 영화나 음반도, TV 속의 이미지도 여기에 해당된다. 특히 TV 이미지를 들어 보드리야르는 “TV의 현실세계로 용해, 현실세계의 TV로 용해”라고 말한다. 운전자의 속도위반을 막으려고 세워둔 마네킹 경찰, 이탈리아 식당 분위기를 알리기 위해 영화 ‘대부’ 주인공인 말런 브랜도 사진을 걸어 놓는 일이 여기 해당된다. 이미지가 진짜를 대신하며, 때로는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얼마 전 끝난 드라마 ‘바람의 화원’을 본 학생들이 내게 묻는다 “신윤복이 여자였느냐? 김홍도와 신윤복이 남녀관계였느냐?”고 말이다. 학생들이 이렇게 물어오는데 일반인은 어떠할까? 신윤복이 여성이었다는 생각과 극중 문근영의 이미지로 역사 속의 신윤복을 바라볼 것이다.

미술사 책에 신윤복이 여자였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느린 선으로 여색을 풍기게 하는 묘사를 잘했다고 한다. 정조 순조시대 사치와 여흥을 즐겼던 쾌락주의 경향이 신윤복의 여색도를 낳게 한 요인이 아닐까라는 추측도 있다. 김홍도의 선보다 신윤복의 선이 더 부드럽고 유려한 묘사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이런 묘사 방식의 차이점을 근거로 그들 간의 관계를 여성에 대한 남성적 보살핌으로 극화하기엔 너무 억지스럽다.

최불암 씨에게 전해졌던 농촌 민원은 제자리를 찾아갔을 것이다. 드라마 ‘허준’이 한의학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가져다주었지만 드라마가 끝난 후 한의원의 열기도 제자리를 찾았다. 그러나 남장 여자 신윤복의 이미지는 오래갈 것 같다. 역사 속의 김홍도와 신윤복을 남녀관계로 놓고 생각하지 않을까? 미술에 대한 사람의 관심을 이끌었다는 의의가 있을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술세계에 초점을 둔 드라마 전개 속에 멜로드라마의 박진감과 반전을 담았어야만 했다. 멜로드라마를 만들겠다는 의도로 시작된 미술드라마라는 점이 잘못이다.

보드리야르의 입장은 확실성과 절대적 진리만을 추구해온 과거에 대한 비판에서 나왔다. 진실되고 독창적인 문화적 창조가 고갈된 상황 속에서 시뮐라크르 문화가 어느 정도 긍정적 기능을 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우리 시대 문화가 다양한 원천을 통해 풍요로워질 수 있다.

드라마는 어느 정도 허구를 포함한다. 좀 더 극적으로 드라마를 전개하고 관심을 끌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는 조금 더 조심스러워야 하지 않을까. 역사를 현대적 의미로 재해석한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검증되지 않은 사실을 전제로 해서는 안 된다. 다양하고 풍요로운 문화의 원천이기 이전에, 방송의 공기능을 망각한 흥미 위주의 프로그램이라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 역사적 사실의 왜곡만은 안 했으면 한다.

박일호 이화여대 조형예술대 교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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