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울고 있다

  • 입력 2008년 11월 18일 03시 01분


실존과 소외를 성찰하는 작업을 통해 견고한 작품세계를 구축해온 오원배의 신작 ‘무제’(265X162cm). 사진 제공 리씨갤러리
실존과 소외를 성찰하는 작업을 통해 견고한 작품세계를 구축해온 오원배의 신작 ‘무제’(265X162cm). 사진 제공 리씨갤러리
인간소외 다뤄온 오원배 교수

“소재 바꾸었지만 주제는 같아”

그가 꽃을 그렸다. 대형 화면에 무뚝뚝한 건축물이나 인간 군상을 그려온 중견화가의 새로운 시도다. 시장에 아부하지 않는 작가주의 화가로 알려진 오원배(55) 동국대 교수의 ‘존재와 의미의 이중풍경’전에 선보이는 신작들. 색채도 밝아졌다. 심경에 변화가 생긴 것일까.

“그건 아니고, 이전 전시와 다른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 미술은 생물과 같으며, 늘 그림은 변화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내가 그린 꽃은 예쁘고 생명력 있다는 것 외에 의미도 갖고 있다. 공허함을 내재한 무거운 꽃이라고 할까.”

둘로 나뉜 화면에 얼굴을 마주한 꽃과 건물. 묘한 긴장감과 미적 질서를 만들어낸다. 삶이 모호하듯, 그의 꽃도 모호하다. 무작정 화사한 꽃이 아니다. 흐드러진 꽃잎 위로 물감 흐른 자국이 남아 있다. 수다스럽지도, 완벽하지도 않은 꽃은 그가 우직하게 천착해 온 ‘소외’와 ‘실존’이란 주제와 맞닿아 있다.

“혹독했던 군생활은 내게 실존에 대한 훈련 기간이었다. 사방이 지뢰밭인 최전방에서 여러 번 죽음을 목격했다. 죽음이 흔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졌던 시절, 깜깜한 밤 보초를 서며 온 우주와 접했던 그 시간이 실존을 파고드는 내 작업의 뿌리가 된 것 같다.”

남들이 추상과 개념작업을 추종할 때 그는 홀로 시류를 거슬러 형상에 대한 관심을 담아냈다. 그런 점에서 2003년 개인전 제목이었던 ‘소외를 찬미하라’는 작가의 평소 마음자리를 짚어낸 문구였다. “인간은 소외를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다. 그렇다면 소외를 토닥거리고 즐겨야 한다는 생각이다.”

간결한 구조물과 대담한 꽃봉오리가 엇갈리며 세련된 화음을 빚어낸다. “사람들은 내 그림을 어둡다고 하지만, 난 어둠을 빌려 밝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19일∼12월 3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리씨갤러리 02-3210-0467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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