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소통]서울 ‘트랜스미션’-‘플랫폼 서울’展

  • 입력 2008년 11월 18일 03시 01분


쌈지스페이스의 ‘트랜스미션’전은 실제 공간을 변화시켜 영화 ‘매트릭스’처럼 관객이 가상현실 속으로 빠져든 듯한 체험을 제공한다. 똑같이 생긴 여러 문 가운데 제대로 문을 찾아야만 전시장에 들어갈 수 있다. 3층 전시장에선 덴마크 현지 시간의 밝기를 그대로 재현한 작업을 볼 수 있다. 사진 제공 쌈지스페이스
쌈지스페이스의 ‘트랜스미션’전은 실제 공간을 변화시켜 영화 ‘매트릭스’처럼 관객이 가상현실 속으로 빠져든 듯한 체험을 제공한다. 똑같이 생긴 여러 문 가운데 제대로 문을 찾아야만 전시장에 들어갈 수 있다. 3층 전시장에선 덴마크 현지 시간의 밝기를 그대로 재현한 작업을 볼 수 있다. 사진 제공 쌈지스페이스
전시장 어디고 작품은 뭔지…

현실-비현실, 벽을 없애다

분명 전시장이 맞는데…. 입구는 굳게 닫혀 있다. 잠시 망설이는데 갑자기 문이 스르륵 열렸다 닫힌다. 얼른 1층으로 들어서니 계단참에 흰색 문 다섯 개가 나타난다. 일일이 손잡이를 돌린다. 어떤 문은 열리고, 어떤 문은 열리지 않는다. 2층도, 3층도 동일한 구조다. 계단, 벽, 문도 똑같다. 열린 문을 들여다보면 화장실이 나오거나, 계단으로 내려가는 통로가 보인다. 도대체 작품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위 아래층을 헤매다 보면 문득 ‘내가 어디에 있는지’ 헷갈린다. 미로에 갇힌 것 같다.

요즘 서울 마포구 창전동 쌈지스페이스(02-3142-1693)를 찾은 관객들은 가상현실 속으로 빠져든 듯한 체험을 한다. 12월 31일까지 열리는 덴마크 작가 그룹 AVPD(아슬라크 비베크와 페테르 되싱)의 ‘트랜스미션(Transmission)’전의 현장. 두 작가는 건물을 통째로 활용해 우리의 시공간 감각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유도한다. 사람들이 절대적으로 받아들이는 현실이 주변 환경여건에 따라 얼마나 주관적으로 바뀔 수 있는지를 몸으로 느껴보는 기회다.

미래를 엿본 듯한 이 전시와 더불어 챙겨볼 전시가 있다. 23일까지 구 서울역사에서 열리는 ‘플랫폼 서울’전(02-739-7098).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떠나면서 또 다른 측면의 가상현실과 만나는 자리다. 현실과 비현실, 가상과 실재의 울타리를 가로지르는 작업들은 일상에서 감지하기 힘든 시간과 공간을 새삼 일깨워준다. 건축과 현대미술의 소통을 시도하면서 낯선 세계 속으로 관객의 손을 이끄는 두 전시를 소개한다.

#공간의 매혹 1-쌈지스페이스

현실의 공간에 작은 변화를 주었을 뿐인데 컴퓨터 게임 속으로 들어선 듯 어리둥절하다. 어떻게 전시장으로 들어가야 하는지, 어디서부터 전시인지, 무엇이 작품인지,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건축과 멀티미디어, 디자인이 경계를 허물고 소통하는 이번 전시는 이 같은 질문을 통해 고정관념에 의문을 제기한다.

우선 전시장과 작품의 구분이 없다. 예전 흔적을 싹 지운 건물 자체도 작품이다. 2층 전시장의 작품(‘Displacement’)은 인간이 바라보는 대상에 대한 확신을 뒤엎는다. 긴 복도처럼 보이는 통로는 정작 기역자로 휘어져 있는 것. 3층에선 덴마크 코펜하겐 현지 시간의 밝기를 형광등으로 재현하는 작업을 볼 수 있다. 서울이 낮이면 그곳은 밤. 낮에는 어둡고 저녁엔 밝아지는 램프를 보며 관객은 ‘지금 여기’와 다른 시공간을 경험한다.

작업을 위해 내한한 두 작가는 말했다. “컴퓨터 게임 안에는 내가 아닌 아바타가 들어가지만 우리는 현실 속에서 비현실적 상황을 직접 경험할 수 있게 만들고자 했다.”(되싱) “SF소설 ‘스페이스 오디세이’ 등에서 우주 저 너머 다른 공간, 미래로 가는 것처럼 인간의 새로운 경험을 체험하도록 하고 싶었다.”(비베크)

#공간의 매혹 2-구 서울역사

군데군데 모여 있는 노숙인들을 지나쳐 구 서울역사 안으로 들어서면 시곗바늘이 한순간 과거로 되돌아간다. 어둠 속에 얼핏 모습을 드러낸 실내는 철지난 영화 세트처럼 낯설고 퇴락한 모습이다. 여기저기 구멍 뚫린 천장에 찢어진 벽지, 군데군데 파인 바닥. 그 속에는 이 공간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국내외 현대미술작품들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다.

다카야마 아키라의 ‘동서남북’은 구 서울역사의 장소적 맥락을 한껏 활용한 작품. 작가가 만들어낸 일본인 할머니의 이야기가 녹음기에서 흘러나온다. 관객은 지정된 장소에서 창밖을 내다보며 건물이 주는 다층적 의미를 돌아본다. 예전의 화려함을 짐작하게 하는 2층 홀에서 음악을 건축적 구조로 느끼게 하는 재닛 카디프의 작업도 압도적이다. 사물의 윤곽이 어렴풋이 보이는 ‘개와 늑대의 시간’에 관람을 권하고 싶다. 세월의 기억이 얼룩진 공간에서 현재의 바깥 풍경을 바라보는 느낌은 특별하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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