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이승의 恨잊고 편히 쉬렴, 아들아! 팔순노모 살풀이춤

  • 입력 2008년 11월 7일 02시 57분


민살풀이춤 명인 장금도씨 16일 공연

“헐 줄 아는 게 요것(춤)밖에 없응게.”

수건을 들지 않고 추는 살풀이춤인 민살풀이춤의 명인인 장금도(80) 씨의 ‘해어화 장금도’가 16일 오후 5시 서울 서초구 예술의 전당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열린다.

이 공연은 먼저 간 아들의 넋을 기리는 살풀이 무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베트남 참전으로 인한 고엽제 후유증에 시달리던 아들 이영철 씨는 올봄 예순셋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 불화했던 어머니와 화해한 지 3년이 지난 뒤였다.

“‘기생 아들’ 소리 듣기 싫다고 아들이 울며 소리쳤소. 춤을 출 수가 없었지. 몇 번 무대에 서긴 했어요. ‘계원들하고 온천 간다’고 둘러대고, 전날 세탁소에 맡겨 놓은 한복 챙겨 갖고 몰래 다녀왔지.”

민살풀이춤을 가장 고형(古形)에 가깝게 추는 인물로 꼽히는 장 씨. 열두 살에 기생이 되어 춤을 배우기 시작한 그는 곧 ‘인력거 두 대가 와야 춤추러 간다’는 말이 나올 만큼 유명한 예기(藝妓)로 이름을 날리게 됐다. 그러다가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열여섯 살에 후처로 시집을 갔고 아들을 낳았다.

“시집가서 시어머니가 버선을 기우라고 내놓으시는데 내가 바느질을 할 줄 아나, 춤밖에 몰랐으니. 그래도 춤으로 집 두 채 살 만큼 벌었소(웃음).”

하지만 아들은 ‘기생 춤꾼’ 어머니를 인정하지 않았다. “너희 엄마 우리 집에서 춤췄다”는 친구의 말을 듣고 온 열 살 난 아들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결혼한 뒤에도 친정집에 보탬이 되고자 춤을 춘 장 씨였지만, 그 아들을 보고 그날로 춤을 접었다.

“다음 세상엔 있는 집에서 태어나길, 춤 안 추는 팔자가 되자.”

장 씨는 수도 없이 바랐다고 했다.

옛 관객들 눈에 띌까 싶어 노인정 근처에도 안 갈 만큼 가슴을 졸일 때도 있었다고 했다. 주변의 청에 못 이겨 2002년 KBS ‘국악 한마당’에 출연했을 때 손자 손녀들이 TV를 보고 “할머니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냐”고 물었다.

서먹했던 아들이 마음을 푼 건 50년이 지나서였다. “2005년 서울세계무용축제 공연이 끝나고 아들이 꽃다발을 들고 무대로 올라옵디다. (공연에 온 게) 처음이었소. 그날 저녁에 다 같이 밥 먹는데 서로 한마디도 안 했지. 그러고 나서 언젠가 내가 여기저기 쑤신다 했더니 퉁명스레 한마디 합디다. ‘어머니는 하고 싶은 일 했는데 왜 몸이 아프시오?’”

예순이 돼서야 ‘춤추는 어머니’를 받아들인 아들은 어머니보다 앞서 갔다. 아들의 초상이어서 빈소로 갈 수도 없었던 어머니는 장례 뒤 쓰러져 여름까지 병원 신세를 졌다고 했다.

“담 세상에서는 지가 어른 할라고 먼저 갔는갑소”라고 팔순 노모는 말하면서 쓸쓸한 웃음을 지었다. 1만∼5만원. 02-3216-1185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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