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베를린 필은 영원한 ‘음악의 제국’

  • 입력 2008년 11월 6일 02시 58분


20, 21일 3년만에 내한공연… 브람스 교향곡 전곡 연주

‘음악이 세상의 중심이다.’

20, 21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 전당에서 3년 만에 내한공연을 펼치는 베를린 필하모니아의 모토다. 독일 베를린 시내 포츠담 광장 인근에 있는 일명 ‘카라얀 서커스’로 불리는 베를린 필하모니아홀에 들어서면 깜짝 놀라게 된다. 한국의 ‘마당놀이’ 극장을 연상시킬 만큼 무대가 객석의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2440석의 어떤 좌석에서도 무대와의 거리가 최대 30m 이내여서 모든 좌석이 고품질의 음향을 즐길 수 있었다.

베를린 필은 9월 말 이곳에서 라벨의 오페라 ‘어린이와 마법사’로 가을 시즌을 시작했다. 필하모니아 홀은 5월 20일 발생한 화재로 지붕의 약 4분의 1(1600m²)이 불에 타는 피해를 보았지만 빠르게 제 모습을 찾았다. 화재 발생 5분 만에 문화부 장관과 베를린 시장이 현장에 도착했다고 한다.

베를린 필의 경영 총책임자인 파멜라 로젠버그 씨는 “운이 좋았다. 소방서에서 커다란 크레인을 동원해 지붕을 뜯어내고 조심스럽게 계획적으로 불을 껐기 때문이다. 무작정 물을 쏟아 부었다면 홀이 물에 잠겨 음향에 문제가 발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 126년 역사에 상임지휘자 6명 불과

1882년 창단된 베를린 필은 20세기 내내 ‘음악의 제국’으로 군림해 왔다. 그러나 126년 역사에 자취를 남긴 상임지휘자는 불과 6명이다. 베를린 필이 능력 있는 젊은 지휘자를 발굴해 수십 년간 함께 성장하는 전략을 써 왔기 때문이다.

브람스의 친구이자 리스트의 제자였던 지휘자 한스 폰 뷜로(1830∼1894)는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의 교향곡을 연주하는 전통을 세웠다. 헝가리 출신 지휘자 아르투르 니키슈(1855∼1922)는 베를리오즈, 브루크너, 말러의 교향곡을 본격 연주했으며 오늘날과 같은 4관 편성의 그랜드 오케스트라의 전형을 제시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와중에도 독일 정신의 수호자로 추앙받았던 빌헬름 푸르트벵글러(1886∼1954)는 빈 필하모닉,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베를린 국립오페라극장의 음악감독 자리를 석권하며 음악계의 황제로 등극했다. 이후 ‘베를린 필의 수석지휘자=음악계의 황제’라는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1908∼1989)도 33년간 베를린 필과 빈 필(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등 양대 산맥을 거느리며 교향곡과 오페라에서 황제로 군림했다. 특히 카라얀은 음반과 영상물이 수익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베를린 필과 카라얀의 리코딩은 1000여 종에 이르고 전 세계에서 약 1억2000만 장이 팔렸다.

카라얀 사후 베를린 필은 정통 독일계보다는 이탈리아 출신인 클라우디오 아바도(75)에 이어 비틀스의 고향인 영국 리버풀 태생의 사이먼 래틀(53) 등 외국인을 음악감독으로 초빙해 베를린 필의 사운드를 더욱 세밀하게 다듬고 있다.

현재 베를린 필 단원의 평균 연령은 38세로 무척 젊은 편이다. 123명의 단원 중 16명이 여성이며 46명이 외국인(18개국) 연주자다. 베를린 필의 연주자들은 에마뉘엘 파후드(플루트), 알브레히트 마이어(오보에), 벤첼 푹스(클라리넷), 슈테판 도어(호른) 등 세계 최고의 솔로이스트들로도 유명하다. 지휘자는 물론 신임 단원을 뽑을 때 전체 단원 3분의 2가 찬성해야 정단원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 베를린 필의 주인은 시민들

지난해 베를린 필 125주년 기념 시리즈에는 서유럽 음악과 동양(터키)음악의 대화를 내건 ‘알라 투르카’ 시리즈가 독일 전역에서 화제를 낳았다. 독일에는 400만 명이 넘는 터키 이민자가 살고 있고 베를린은 터키의 제4의 도시로 꼽히고 있기 때문이다.

베를린 필은 지역사회에서 미래의 젊은 관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여러 가지 시도를 하고 있다. 파멜라 로젠버그 씨는 “베를린 시 지하철역 중에 마약을 하는 노숙인이 많은 4개 역에서 몇 개월 동안 클래식 음악을 들려줬더니 노숙인들이 전부 사라졌다”며 “베를린 필의 주인은 지휘자가 아니라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우리를 사랑해주는 시민들”이라고 말했다. 7만∼45만 원. 02-6303-7700

베를린=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