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는 ‘외계어’라고요? 영상처럼 음악처럼 그저…

  • 입력 2008년 8월 28일 02시 57분


“순수성이나 진정성보다 감성적 자극에 민감한 현대시는 영상세대인 20대와 잘 어울려요.” 신세대 시인 조혜은 박준 신은영 씨(왼쪽부터)는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좋은 시가 많아지도록 열정을 쏟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박선희  기자
“순수성이나 진정성보다 감성적 자극에 민감한 현대시는 영상세대인 20대와 잘 어울려요.” 신세대 시인 조혜은 박준 신은영 씨(왼쪽부터)는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좋은 시가 많아지도록 열정을 쏟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박선희 기자
■ 갓 등단 20代시인 박준-조혜은-신은영 씨가 말하는 ‘詩’

‘젊은 시’가 꿈틀대고 있다.

한동안 시가 ‘젊음의 장르’라는 말은 문단에서 어색했다. 시로 등단하는 문인들이 대부분 30, 40대였기 때문. 백석 기형도 등 젊은 시인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젊은 작가들이 소설로 몰리는 경향은 아쉬운 대목이었다.

하지만 최근 젊은 시인이 늘고 있는 추세. 올해 문예계간지 ‘실천문학’ ‘현대시’ ‘시인세계’로 등단한 시인들은 모두 20대 초중반이다. 이 중 박준(25) 조혜은(26) 신은영(23) 씨를 19일 오후 함께 만났다. 1980년대에 태어난 이들이 보는 시와 시인은 무엇인가.

○ 문법에서 자유롭다

“문자메시지나 ‘인터넷 외계어’만 봐도 이 세대의 언어 감각이 얼마나 자유롭고 기상천외한지 알 수 있잖아요. 상상 이상으로 재기 발랄하거든요.”

‘젊은 시의 언어적 감수성과 현실적 확산 능력을 함께 갖췄다’는 평을 받으며 이달 ‘실천문학’으로 등단한 박준 씨. 그는 “언어를 통한 비행(非行)의 수단으로, 주류에 대한 반항심으로 시를 썼다”며 “한국 시가 서정(抒情)에만 매달리는 것도 문제지만 그걸 벗어나려고 실험 일변도로 가는 것도 불편하다”고 말했다. 대중의 올바른 삶을 이야기하고 현실에 참가하는 시도 필요하다는 것.

동인 활동에 대한 소신도 밝혔다. 박 씨는 “‘청록파’ ‘후반기’처럼 한국 시에 동인이 남긴 업적은 인정하지만 참여해 볼 생각은 없다”며 “예술은 혼자 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데다 무의미해지거나 권력화할 위험도 공존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촌스럽더라도 작고 소외된 것을 이야기하는 시인이 되고 싶어요. 파괴할 줄 아는 사람이 창조할 줄도 아는 법, 엄숙주의에서 해방된 세대의 가능성은 시에서도 무한하다고 봐요. 물론 저도 포함해서, 하하.”

○ 현대시와 통하는 영상세대의 감수성

“현대시는 진정성 순수성보다 영상이나 음악처럼 감성적 자극에 민감하잖아요. 기성세대보다 오히려 영상세대인 20대와 더 맞는 면이 있어요.”

올해 ‘현대시’에서 등단한 조혜은 씨는 ‘미래파 이후의 시를 쓸 역량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조 씨는 “현대시는 작가의 코드를 인식하지 못하면 이해하기 힘들기 때문에 거부감을 느끼기 쉽다”면서도 “문자를 문자로 해석하지 않아도 음악처럼 피부에 와 닿을 수 있는 시는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황병승 김경주 김행숙 시인 등의 작품이 인상적이었다”는 그는 “감각적으로 바로 와 닿는 촉각적인 시를 쓰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시도 다른 매체와 소통의 가능성을 열어 두고 멀티텍스트로 활용됐으면 좋겠다”며 “시는 희곡으로, 가사로, 시나리오로, 음악으로, 영상으로 얼마든지 변환되고 활용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말했다.

○ 좋은 시는 독자가 알아본다

이달 ‘시인세계’로 등단한 신은영 씨는 개인적인 경험부터 털어놓았다.

“시 공부할 때 미니홈피에 기성 시인의 시를 매일 올렸어요. 그런데 시를 모르는 사람들도 좋은 시는 알아보고 퍼 가는 거예요. 아무리 시가 죽어간다 해도 잘 쓴 시에는 독자들이 반응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신 씨는 “나희덕 안도현 김선우 시인의 작품에서 특히 매력을 느꼈다”며 “누구에게나 하고 싶은 말이 있기 때문에 짧은 언어로 최대의 미학을 보여줄 수 있는 시는 20대에게도 여전히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대학생인 신 씨의 관심사는 시에 국한되지 않는다. “어린이부터 80대 할머니까지 문학으로 대할 수 있는 동화, 드라마 같은 장르에도 도전해 보고 싶다”고 한다.

“언어로 폼을 잡거나 사생활을 자랑하는 수준의 정직하지 못한 시들이 독자를 혼란스럽게 하는 건 문제입니다. 하지만 시의 미래는 부정적이지 않아요. 열정을 쏟아 부은 시는 인정받으니까요. 그런 시가 많아지도록 제 몫을 보태고 싶어요.”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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