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 따라잡기]3년전에 ‘죽 쒔던’ 소설, 타이밍 맞춘 변신 ‘월척’

  • 입력 2008년 8월 16일 02시 59분


요즘 모든 대화는 올림픽으로 통한다. “오늘 메달 몇 개 땄어?” “핸드볼 경기를 봤는데….” “양궁 경기 때 중국 관중 너무하더라.”

라디오에선 올림픽 본다고 안 만나주는 애인에 대한 푸념도 흘러나왔다. 올림픽이라 서점가, 극장가도 울상이란다.

무관심하게 묻히는 것도 많다. 정치 사회 이슈는 뒷전이 된다. 골치 아픈 얘기 안 해서 좋긴 하지만…. 그루지야에선 전쟁이 났다는데. 일반 시민 수천 명이 죽었다는데. 올림픽에 온 그루지야 선수들의 맘은 어떨지. 환호 속에 잊혀진 눈물이 자꾸 어른거린다.

올림픽으로 책도 전쟁도 뒷전이지만, 서점가엔 전쟁 얘기 하나가 화제다. ‘연을 쫓는 아이’(열림원). 지난해 12월에 나와 벌써 14만 부가 팔렸다. “갈수록 반응이 좋아 최근엔 한 달에 2만 부 이상 나간다.”(강희진 열림원 해외문학 담당 에디터)

저자 할레드 호세이니는 아프가니스탄 사람이다. 그의 첫 장편소설인 ‘연을 쫓는 아이’는 아프가니스탄인이 쓴 최초의 영어소설이란다. 미국 포함 38개국에서 800만 부나 팔린 베스트셀러. 국내라고 인기를 끌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근데 약간 갸우뚱해지는 대목이 있다. 이 책은 ‘개정판’이다. 2005년에 국내에서 이미 출간됐었다. 당시 ‘죽 쒔던’ 소설이 왜 이제 와서 인기일까. 출판사 측은 “소설을 원작으로 한 동명영화가 올해 초 개봉해 다시 주목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그 영화를 본 국내 관객은 2만여 명뿐이었다. 베스트셀러가 된 배경엔 타이밍과 타깃의 싸움, ‘낚시의 미학’이 숨어 있다.

기회는 호세이니의 두 번째 장편 ‘천 개의 찬란한 태양’(현대문학)의 성공이었다. 전장에서 절망과 고통을 살아낸 두 여성 이야기가 전작과 달리 국내에서 크게 주목받았다. 호세이니가 누군지, 아프가니스탄 소설이 뭔지를 각성시켰다. 끝내주는 ‘밑밥’이 깔린 것이다.

여기서 ‘연을 쫓는 아이’는 변신의 타이밍을 잡았다. 처음 소개된 2005년에는 성장소설에 무게를 둬 ‘아동용’ 소설로 내놓았다. 이를 개정판에선 “청소년도 함께 읽는 성인소설”로 이미지를 전환시켰다. 표지도 영화 포스터로 바꿨다. 좋은 밑밥이 뿌려진 낚시터에서, 제대로 독자를 낚을 자리로 옮기고, 낚싯대까지 바꾼(책 개정) 셈. 세 박자를 갖춰 월척을 끌어올렸다.

물론 이 모든 건 책이 좋아서다. 읽은 이라면 누구라도 추천하고픈 진정성이 가득하다. 전쟁이란 참화 속에도 피어나는 따뜻한 인간애. 좀 늦었으면 어떤가. 이런 훌륭한 소설을 놓치지 않았다는 게 고마울 따름이다.

하지만 그래서 타이밍은 더욱 중요하다. 세상일도 때를 놓쳐 후회한 게 얼마나 많았던지. 너무 자주 한쪽에만 몰려 다른 걸 못 보진 않는지. 메달 하나 덜 따도 좋다. 이번 올림픽에선 그루지야 선수들을, 전쟁의 참화에도 출전한 이라크 선수들을 응원하련다. 또 언제 그들에게 박수를 보낼 수 있을까. 올림픽도 전쟁도 사람이 먼저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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