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주영의 그림 읽기]소통할 수 없는 장미와 늑대는…

  • 입력 2008년 8월 9일 03시 01분


‘최승호 시인의 말놀이 동시집 3’ 그림=윤정주·비룡소
‘최승호 시인의 말놀이 동시집 3’ 그림=윤정주·비룡소
사람이 많은 마을의 담벼락에 넝쿨 장미가 서로 엉켜 살았습니다. 그중에서 장미 한 송이는 자신들끼리 부둥켜안고 부딪치며, 엉키고, 진땀나게 비비대며 살아가는 것에 남다른 고통을 느꼈고 따라서 그런 생활에 진력이 나고 말았습니다. 어느 가을날 밤 장미는 마련한 씨앗을 불어오는 바람에 날려 보냈습니다. 씨앗은 사람도 짐승도 살지 않는 멀고 먼 외딴 숲 속으로 날아가서 뿌리를 내렸습니다.

장미가 살았던 마을 뒤쪽 들판의 늑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늑대는 선천적으로 대가족을 이루며 들판에 노출된 채로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곧잘 사냥꾼이나 맹수와 같은 포식자들의 표적이 되곤 했습니다. 이들은 집단생활에서 이탈한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고, 짝짓기에서부터 먹는 일에 이르기까지 서열에 따르는 엄격한 생활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구속이 싫었던 늑대 역시 장미가 혼자 있는 외딴 숲 속에서 살기로 결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어느 날 밤 늑대는 지긋지긋한 소굴에서 몰래 탈출해 장미가 사는 곳으로 도망치는 데 성공했습니다. 속박과 규율, 그리고 경쟁생활에서 속 시원하게 벗어난 장미와 늑대는 모처럼 획득한 자유를 만끽했습니다. 언제나 조용하고 아늑했으며 불필요한 긴장감이나 눈치를 살피는 일과도 무관했습니다. 그래서 장미는 키가 큰 미루나무처럼 자랐고, 작은 강아지만 했던 늑대는 황소처럼 자랐습니다.

그때부터 문제가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외진 곳에는 장미와 늑대만이 살고 있었으므로 달리 대화를 나눌 상대가 없었습니다. 소통의 욕구와 열정이 간절하다 하더라도 둘 사이에는 허물 수 없는 장벽이 있었습니다. 장미에게는 장미의 고유한 언어가 있었고 늑대에게는 늑대의 언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둘 사이에 비슷한 점이 있다면 장미에게는 늑대의 이빨 같은 가시가 있었고, 늑대에게는 장미의 가시 같은 이빨이 있었습니다.

그런 공통점은 소통의 수단과는 전혀 무관했습니다. 서로 교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낼 수 없었으므로 외롭고 절망적인 상황만 진행될 뿐이었습니다. 서로가 살았던 마을을 떠나온 것을 후회했으나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장미는 민들레처럼 주저앉았고 늑대는 생쥐가 되고 말았습니다. 아무도 그들의 처참한 모습에 동정의 시선을 보낼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진작부터 잊혀진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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