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크엔드 카페]자연이 깃든 행복한 밥상

  • 입력 2008년 7월 4일 02시 58분


직접 키운 제철 채소에 나무 밥상… 비싼 메뉴보다 멋진 상차림 아닐까

패션 디자이너 지춘희(54) 씨의 집에 초대받아 간 적이 있다.

정원에 마련된 소박한 텃밭과 나무 밥상에 푸짐하게 오른 갖가지 제철 채소들….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있는 그의 집은 마치 느끼한 음식 맛을 칼칼하게 풀어주는 동치미 국물 같은 느낌이었다.

그 자연의 맛 때문인지 집주인이 인심 좋게 가득 푼 밥공기를 뚝딱 비웠다. ‘행복한 밥상’ 앞에서 살찔 걱정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국내 정상급 디자이너이기에 한없이 화려할 것 같지만 지 씨는 소박한 미식가다. 그는 하루가 멀다 하고 흥망성쇠를 거듭하는, 겉만 폼 나는 식당들을 찾지 않는다. 틈만 나면 재래시장에 들러 제철 음식을 사다 요리하는 재래시장 예찬가다. 싱싱한 맛과 따뜻한 정을 찾아 강원도나 서해안으로 훌쩍 떠나기도 한다.

“제철 음식을 구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재래시장에 가면 만사형통이에요. 그런데 젊은 여성들은 제철 채소를 어떻게 다룰지 난감해하더라고요. 싱싱한 재료를 갖은 양념에 버무려 내기만 하면 되는데. 시장에서 상인들과 두런두런 친해지면 그것도 사는 맛이죠.”

삶은 쑥과 불린 쌀을 함께 반죽해 찌는 쑥개떡은 그의 든든한 아침식사다. 소금으로만 간을 한 개운함과 진한 쑥 향기가 어우러진 봄맛이다. 쑥을 팬에 살짝 볶아 물기를 말려 냉동실에 두었다가 밥 지을 때 넣으면 사계절 내내 봄을 즐길 수 있다.

강원도 산속의 깊은 맛이 담긴 개두릅, 액젓과 갖은 양념으로 무쳐 내는 톳나물, 서해안에서 훌훌 데쳐 먹는 주꾸미도 그가 올봄 마음껏 향유한 자연의 선물이었다. 그 후로 기자는 요리사들을 만날 때마다 제철 음식을 묻는 버릇이 생겼다. 토마토, 장어, 민어, 전복 등이 여름 제철음식으로 꼽힌다.

요즘 한껏 물이 오른 토마토는 여름 내내 싱싱하게 즐기다가 껍질째 햇볕에 바짝 말려 허브와 함께 갈아 버터를 만들 때 넣으면 좋다. 토마토를 올리브오일, 레몬, 화이트와인과 함께 넣어 숙성시키면 시원한 토마토수프도 된다.

넉넉하게 인심 좋은 재래시장에서 싼값에 얻을 수 있는 제철 음식이야말로 계절의 축복이요, 살아가는 즐거움이다. 우리는 혹시 외국 재래시장은 마치 성지 순례하듯 다녀오면서 한국 재래시장의 멋과 맛은 폄하하고 있지는 않은지. 올여름 휴가 때 제철 음식을 찾아 호젓하게 국내 여행을 떠나보면 어떨까.

김선미 산업부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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