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미소’ 어느쪽 주장에 ‘미소’를?

  • 입력 2008년 5월 28일 03시 00분


■균열된 서산마애삼존불상 보수 한창… 향후 대책 싸고 딜레마

“지난해 보호막 제거 이후

관광객 손 타 훼손 심해져”

“인위적 구조물, 가치 훼손

통풍 막아 습기 생기기도”

“수지 원액이 균열 밖으로 흘러내리면 안 돼! 주사기 강도를 최대한 신중하게 조절해.”

26일 오후 충남 서산시 국보 제84호 서산마애삼존불상(6세기 말∼7세기 초). 두 명의 사내가 ‘백제의 미소’로 불리는 이 마애불을 둘러싼 좁은 비계에 쭈그리고 앉아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다. 한 치의 실수도 용납 못한다는 듯 침묵과 긴장 속에 이마에 땀만 송골송골 맺힌다.

문화재 보존처리 업체 ㈜씨엔티 직원인 이들은 21일부터 마애불 본존불 머리와 왼쪽 어깨 윗부분 광배 등 여러 곳에 생긴 균열을 보수하고 있다.

이들은 균열에 빗물이 들어가지 않고 틈이 더 벌어지지 않게 주사기로 경화 합성수지 원액을 주입했다. 수지가 굳자 광물 성분 안료를 합성수지와 섞어 반죽을 만든 뒤 광물 결정 색깔에 맞춰 촘촘히 발랐다. 붉은색, 황토색, 짙은 갈색, 검은색, 흰색…. 엉뚱한 색깔을 바르면 바위 표면과 어울리지 못해 금방 티가 나기 때문에 집중력이 필요한 작업이다.

현장에서 보존 처리 작업을 하고 있는 이창구 씨는 “수지 주입 양이 조금만 넘쳐도 밖으로 흘러나와 굳어버리고 그렇게 되면 국보를 훼손하는 것이기 때문에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마애불의 균열이 전체 바위에서 일어나는 풍화작용의 결과라는 것. 바위 꼭대기의 균열로 빗물이 스며들어 내부의 균열을 가속화하면 지금 보수만으로 문제 해결이 되지 않는다.

문화재위원인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현재의 균열은 잔주름 정도지만 더 큰 골을 막기 위해 근본적인 대책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화재청은 조만간 자문회의를 열어 이날까지 진행된 보수작업을 재점검하기로 했다.



▲ 영상취재 : 동아일보 문화부 윤완준 기자

○ 꼬챙이로 마애불 쑤시기도…보호해야

문제는 균열뿐이 아니다. ‘백제의 미소’는 보존이냐 향유냐의 딜레마에 처해 있다. 지난해 12월 43년간 마애불을 가렸던 보호각을 철거한 뒤 관람객이 통제 없이 불상에 접근하면서 새로운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관람객이 마애불을 만지는 일이 잦고 일부 관람객은 꼬챙이로 마애불을 쑤시는 등 훼손 사례가 보고됐다. 균열이 산성비에 노출돼 훼손이 가속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인위적인 훼손으로부터 마애불을 보호할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보호각이든 아니든 그 방법은 구조물 설치가 될 텐데 경관을 해치지 않고 관람을 방해하지 않을 묘안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에는 내부가 들여다보이는 투명 보호각 시안이 문화재위원회에 보고되기도 했다. 또 마애불로 연결되는 다리를 통제하고 마애불 옆 축대를 없앤 뒤 마애불 앞 골짜기 맞은편에서 마애불을 관람하게 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바위 전체의 풍화작용을 막기 위해 전체를 감싸는 보호각을 만들자는 제안도 있다.

○ 보존하자고 가치 떨어뜨리면 안 돼

그러나 보존을 위한 ‘인위적’ 노력이 마애불의 문화재 가치를 오히려 떨어뜨릴 수 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실제로 26일 보수 현장에서 확인한 마애불 본존불의 이마에는 곰보 자국 같은 홈이 많았다. 보호각이 통풍을 막으면서 암석 표면에 습기가 찼고 이 때문에 수분을 머금은 암석의 박락(剝落)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새 보호각으로 보고된 시안은 지나치게 현대적이어서 마애불의 경관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오는 상태. 문화재위원인 최성은 덕성여대 교수는 “보호각을 철거할 때만 해도 자연 채광을 되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인위적인 훼손 문제가 발생할 줄 몰랐다”면서도 “인간의 손을 최소화하면서 마애불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으로 보호각은 적합하지 않다”고 말했다.

문화재위원인 소재구 국립고궁박물관장은 “숭례문 화재도 사람이 지키지 않아서 생긴 비극”이라며 “보호각보다 24시간 안전 요원이 지키는 게 낫다”고 말했다.

서산=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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