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 “섬진강 매화가 날 기다릴텐데” 6년만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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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8년 3월 19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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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저서에 친필 사인을 하고 있는 법정 스님. 소식을 듣고 찾아온 신도들이 평소 사진 찍기를 마다하는 스님 곁에서 연방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스님은 “내가 앓고 나니 ‘사진 인심’도 좋아졌다”고 말해 폭소를 자아냈다. 사진 제공 길상사 주지 덕조 스님
자신의 저서에 친필 사인을 하고 있는 법정 스님. 소식을 듣고 찾아온 신도들이 평소 사진 찍기를 마다하는 스님 곁에서 연방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스님은 “내가 앓고 나니 ‘사진 인심’도 좋아졌다”고 말해 폭소를 자아냈다. 사진 제공 길상사 주지 덕조 스님
《지난해 말부터 ‘절집’과 시중에 느닷없이 법정(法頂·76) 스님의 ‘와병설’이 나돌아 많은 이가 애를 태웠다. 매년 봄가을 두 차례 대중법회를 하시던 법정 스님은 지난해 10월 길상사에서의 가을법회 이후 대중 앞에 일절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하지만 스님의 직계 제자들과 가깝게 지내는 지인(知人)들의 진술이 서로 엇갈려 병세의 갈피를 잡기가 어려웠다. 그런 차에 스님이 18일 예전과 다름없이 꼿꼿한 자세와 맑은 표정으로 불쑥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 모습을 드러냈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수십 명의 신도는 정정한 스님의 모습을 확인하곤 “생각보다 건강하시네요” “스님, 정말 괜찮으신 거죠”라고 되묻곤 했다. 스님은 “보시는 바와 같이 현품(現品) 그대로”라며 웃으셨다. 그때마다 길상사 경내에는 봄꽃보다 화사한 웃음이 번져간다.
모처럼 만난 스님과 다담(茶談)만을 나눌 수는 없었다. 수첩을 꺼내들고 궁금한 것을 여쭈며 스님의 말씀을 받아 적기 시작했다. 길상사 법문 외에 정식 언론 인터뷰는 6년여 만에 성사된 것이다.
―다신 못 뵙게 되는 것 아닌가 걱정하기도 했습니다. 병세는 어느 정도시고, 현재 상태는 어떠신지요.
“많은 분에게 걱정을 끼쳐 죄송합니다. ‘노쇠 현상’으로 명(命)땜 하느라고 그랬던 것 같아요. 우리 인생에 다들 한 고비가 있는데 이런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해 성숙해 가는 것이지요.”
―음식, 잠, 규칙적 생활 등 매사 삼가며 계율을 지킨 수행자로서 만감이 교차하셨을 것 같은데요.
“내 몸일지라도 내 맘대로 안 되는 것이 인생이지요. 또 뜻하지 않은 일을 당할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이전에 환자들을 많이 위로해 주곤 했는데, 나 자신이 환자가 되니까 참 고독하고 막막하더군요. 병을 계기로 인간적으로나 수행자로서의 나 자신이 많이 성숙해진 것을 느끼게 됩니다.”
―주위 분들이 걱정을 많이 하더군요.
“고맙고 감사한 일입니다. 병이라는 게 죽을 정도가 아니면 앓을 만큼 앓다가 회복하는 것이지 내 의지대로 되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그 과정에서 깨치신 것이 있다면….
“한 생애를 겪으면서 그런 일들을 통해 연륜이 쌓여 인간적으로 성숙하고, 남의 사정도 알게 되는 것이지요. 더불어 내 몸이 나만의 몸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많은 이의 마음, 염려, 배려가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는 것을 늦게나마 깨닫게 된 것이지요.”
―오랜만에 뵙게 돼 새로 출범한 정부에 대해서도 여쭙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정치 얘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그저 이명박 대통령께서 잘해 주길 바랄 따름입니다. 다만, 한반도 대운하에 대해서는 반대합니다.”
스님은 최근 작고한 김병관 전 동아일보 회장에 대해 “고인과는 생시에 여러 차례 만났는데 오랜 지기처럼 느껴졌다. 영결식 전후 신문 등을 통해 고인이 언론자유와 동아일보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노심초사하면서 고독한 투쟁을 하셨는지 알게 됐다”고 추모했다.
점심 공양을 맛있게 마친 스님은 덕조 덕진 덕일 등 세 상좌와 함께 경내에 개축 중인 명상수련원(357㎡·108평)을 둘러봤다. 스님은 “호화롭지 않고, 지나치지 않게 하라”고 누누이 당부했다. 스님은 평소 “길상사는 가난하고 맑은 절이 되었으면 좋겠다. 절(寺)은 절로 절로 돼가는 것”이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하지만 “아직 팔 힘이 없다”며 상량문 쓰는 것은 다음 기회로 미루신다.
몇 년여 전부터 매년 ‘춘(春)3월’ 좋은 날을 골라 스님과 함께 남도(南道) 일대 꽃구경을 다녀오곤 했다. 어느 해인가 스님이 섬진강가에 흐드러지게 핀 매화를 가리키며 “꽃 멀미가 난다”고 하신 것이 어제일처럼 생생하다.
“올해도 남도로 꽃구경 다녀오실 계획인가요?”
스님이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하시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여셨다.
“아직 마음을 못 정했습니다. 조금 있다가 가보려고 합니다.”
차 한 잔을 비우신 스님이 다시 말씀하셨다.
“매화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오명철 전문기자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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