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머니스트, 애정어린 상상력 28년…황주리 회고전 23일부터

  • 입력 2008년 1월 22일 02시 59분


코멘트
깊은 맛을 자아내는 황주리의 흑백그림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184×244cm, 2003년). 사진 제공 갤러리 현대
깊은 맛을 자아내는 황주리의 흑백그림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184×244cm, 2003년). 사진 제공 갤러리 현대
1980년대 중반 ‘미술계의 신데렐라 같은 존재’로 떠올랐다. 1990년대 이후 인기 작가의 대열에서 빠지지 않았다. 밝고 강렬한 색채와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도시적 삶이 연출하는 풍경을 담은 독특한 작품들. 네모와 원 등 작은 프레임에 담긴 그림들이 큰 이미지로 어우러진다.

화가 황주리(51) 씨에 대한 얘기다. 1980년대 원고지에 그린 초기작부터 최근의 자화상 시리즈까지 대표작 50여 점을 선보이는 그의 회고전이 마련된다. 23일부터 2월 13일까지 갤러리 현대와 두가헌 갤러리에서 열리는 ‘황주리 1980∼2008,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전시 제목의 의미를 묻자 그는 “그 말이 삶의 유일한 진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전시에 맞춰 화집 ‘And Life Goes On’과 산문집 ‘땅을 밟고 하는 사랑은 언제나 흙이 묻었다’도 나왔다(생각의 나무). 02-734-6111

○ ‘유채색의 꿈, 무채색의 꿈’

화려한 원색의 그림으로만 그를 기억하는 이가 많다. 화가는 고개를 젓는다. “컬러 작업은 상업적으로 인기가 높다. 그래서 사람들은 날 그렇게 한 면으로만 보지만 사실 초기부터 흑백 그림을 병행해 왔다. 특히 1987년부터 10년 동안 미국 뉴욕에 머물면서 흑백 작업을 많이 했다. 요즘엔 흑백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이 늘어나 기쁘다.”

이번 전시는 무겁고도 가벼운 그의 양면적 모습을 확인하는 자리다. 작품 속에 삶과 죽음, 기쁨과 슬픔, 어두움과 밝음 등을 모두 놓치지 않으려는 화가의 마음풍경이 스며들어 있다.

작품마다 공통적인 것은 단편적 이미지의 집합. 그는 “삶의 작은 얼굴이 모여 삶의 커다란 얼굴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 지속하는 삶에 대한 애정

휴대전화, 기타, 여행가방 등 일상의 사물과, 포옹하는 연인이나 춤추는 사람들 같은 도시 남녀의 일상. 작품마다 사소한 풍경이 빼곡히 차 있다.

“내게 그림은 시가 불가능한 시대의 시, 사랑이 불가능한 시대의 사랑이었으면 한다”는 화가의 말. 그러니 굳이 이야기를 해독하려 애쓰기보다 인간 군상의 희로애락 드라마로 가슴으로 ‘느끼면’ 될 것 같다.

그에겐 세상의 모든 것이 빈 캔버스로 다가온다. 원고지와 돌, 안경 등이 그랬다. 최근엔 우편엽서가 등장했다. 1층 전시장에 걸린 신작 ‘여행에 관한 명상’은 그가 20여 년간 모아온 엽서를 활용한 대형 작품. 지인이 보낸 엽서나 직접 찍은 사진 위에 추억과 상상력의 우물에서 건져낸 이미지들을 그려 넣었다. 존 레넌과 고흐 자화상, 스핑크스 사진까지 파노라마 같은 그림은 ‘숨은 그림 찾기’처럼 들여다볼수록 재미를 더한다.

세월의 흔적이 담긴 이 모든 작품을 통해 결국 그가 말하고 싶은 것은 휴머니즘, 삶과 사람에 대한 따스한 애정이다. 산문집 서문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사람의 사랑도 삶도 완전한 것은 이 땅에 없느니 그저 너그럽게 한 생을 보내라’고.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