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 “시대와 불화, 그 굴레서 벗어나고 싶다”

  • 입력 2008년 1월 3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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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더는 시대의 아이들과 불화(不和)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문열(사진) 씨는 새해 소망을 이렇게 밝혔다. 건국둥이(1948년 출생)로, 올해 환갑을 맞는 이 씨에게 2008년의 의미는 남다르다. 그 새해를 소설 ‘초한지’(민음사)를 내는 것으로 시작했다. 2002년 3월∼2006년 3월 본보에 연재했던 ‘큰 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를 단행본으로 펴낸 것이다. 우선 첫 두 권이 나왔고, 5월 말까지 전 10권을 완간할 계획이다.

“과거의 일에서 현재의 패러다임을 얻는 게 역사소설의 중요한 의미일 겁니다. 나는 오늘날의 화두를 진말한초(秦末漢初)에서 찾았습니다.”

작가가 염두에 둔 것은 역사에 나타난 사회 통합과 리더십의 문제다. 당시 진말에는 한(韓), 위(魏) 등 여섯 나라가 종(縱)으로 동맹을 맺어 진에 대항하자는 합종설이 있었고, 진이 이 여섯 나라와 횡(橫)으로 각각 동맹을 맺어 화친할 것을 주장하는 연횡설이 있었다.

“연횡설은 훌륭한 계책이었지만 글쎄요, 그걸 택한 나라가 가장 먼저 망했어요. 합종설 역시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내부 통합 없이 추진됐기 때문인데, 난 이 상황이 오늘날의 사회통합 문제, 남북문제에 대한 접근을 떠올리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방적인 흡수냐, 아이덴티티 일부의 상실을 감내하는 공존이냐의 문제였죠. 리더십도 그랬습니다. 굴욕도 기꺼이 감수하는 지극히 공적인 유방과 감정에 치우치긴 했지만 도도한 멋이 있었던 항우. 리더의 두 전형을 보여 준다고 할까요.”

그렇지만 작가의 주장이나 의견을 강하게 넣는 대신 사실에 충실하게 바탕을 두어 독자의 판단에 맡겼다는 게 이 씨의 설명이다.

미국 보스턴에서 체류하다 지난달 일시 귀국해 경기 이천시 자택에 머물고 있는 이 씨. 출범을 앞둔 ‘이명박 정부’에 대해 “문화 부문에 대해 전반적으로 재검토해 달라”고 밝혔다.

“지난 10년 동안 문학 혹은 문화가 그 어떤 정권에서보다도 심하게 통제받았습니다. 감옥에 보내는 것만이 통제가 아닙니다. 하나의 방향만을 강요하고 지원을 주지 않는 것도 통제의 수단이죠. 최근 수년간 문화 조직을 봐도 ‘다른 목소리’라는 게 없더군요. 남북 문인이 만나는 자리(2004년 남북작가대회)에서도 나에게는 전화 한 통 없었어요.”

건국둥이인 그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각별한 마음을 표시했다.

“내가 태어난 날이 이승만 대통령이 국회에서 간선(間選)된 날(6월 20일)입니다. 대한민국이 세운 학교에서, 국민 형성 교육을 일사불란하게 받으면서 자라났어요. 그런데 국가의 정통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과거사 청산 같은 일련의 일들이 당혹스러웠습니다. 이상이 현실이 되는 과정에서 비판과 반성이 나올 수는 있겠지만, 국가 정통성의 나라됨이 부인되지 말아야 합니다.”

1월 말 미국에 돌아가는 이 씨는 올해 말까지 글쓰기에서 손을 놓고 충분히 공부하는 시간을 갖겠다고 말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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